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국모국경 May 04. 2023

예방. 그 '제 자리 노동'에 오늘은 칭찬받고 싶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소파에 또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옷들의 제 자리는 아들 방이다.

다시 가져다 놓는다.

소파는 깨끗하게 변했는가?

아니다.

소파는 원래의 모습으로 있는 거다.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밥통이 배부르게 변했는가?

그 또한 아니다

밥통 역시 밥이 들어있어야 하는 마땅함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단지 변한 것은... 내 오른 팔이다

지난 21년의 시간

티 나지 않는 '제자리 노동'으로 변한 건

수시로 쑤셔오는 내 오른팔뿐이다

채 썰기가 특기였는데...

하면 할수록 능숙하게 더 화려해져야 할 특기가

팔의 통증으로 오히려 굵게 퇴화되어 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 멀쩡했던 일에

오늘은 후회가 되었다

왜   '제자리 노동'에 21년을 소모했을까?

티 나지 않는  '예방'업무에

남들이 몰라줄까 전전긍긍하며 '전국 최초'라는  식상한 말까지 붙여가며 했던 업무에, 선택에, 오늘은 후회가 되었다


나도 수사를 선택할걸... 하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놀부 심보가 들어찬다.

아마도 샘인 것 같다

옆  수사팀 사무실에 격려금이 내려왔다는 소리에 샘이 난 것 같다

요새 늦은 시간까지 퇴근도 못하고 일을 하더니 아마도 범인을 많이 잡은가 보다.

나쁜 놈을 잡으면 잡은 티가 나고

뭔가 경찰로서 국민을 위해 일한 것 같은 자긍심도 풍풍 올라오고

거기에 격려금이라는 보너스 보상까지

더해지면.

~~~ '더 커 보이는 남의 떡'

인지적 오류를 달래도 보고  누그러도 보지만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예방으로

가해자로 만들지 않은 인명 수를 세어본다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아무도 인정하지도 않는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수를 세어본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에 견디다 못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복수를 결심하며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는

허구의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그 수를 세어본다.


예방은 단순히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질서를 보존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국민들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래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앙큼하게  막고 서는 일이다.

그 예방의 일에

오늘만큼은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고생했다' '잘했다'라고 칭찬받고 싶은. 응원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찬다.



그리고

그럴 일 없겠지만, 정말 그럴 일 없겠지만

운동을 끝내고 돌아온 아들이

깨끗해진 자기 방을 보고

오늘도 엄마가 있어 행복하다 말해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파파게노 효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