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works park, hot water beach and..
우리는 '코로만델 톱 10 홀리데이 파크'를 떠나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인 waterworks를 찾았다. 지난밤에 숙소에 있는 책자들을 들여다보다 발견한 곳인데 물에 관한 여러 가지 기구들이 꾸며져 있다 하여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곳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물이 풍부한 지역인 코로만델의 지역 특성을 물과 관련한 놀이기구들로 구성된 작은 공원이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hot water beach 전에 방문하기에 좋은 곳이라 판단한 우리 가족은 숙소에서 차량으로 15분 정도 운전해서 waterworks의 주차장과 아담한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자연 속의 숲 속 정원 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바로 입구에 진열되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어젯밤에 경험한 뉴질랜드의 신선한 아이스크림의 맛은 두 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녀들의 시야를 가리고 침샘을 자극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급기야 두 알씩 쌓아 올린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서야 우리 가족은 공원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waterworks의 자랑이라 불릴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연못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고 햇살을 머금은 연못을 가득 메운 연잎들 사이로 비치는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잠시 이 연못 속에는 과연 몇 마리의 올챙이가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지만 이내 그 궁금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유치한 듯 하지만 지역의 어느 엔지니어가 고안했을 것 같은 각양각색의 놀이기구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설명서가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구를 작동하며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 역시 그들과 함께 동심의 나라로 이동해서 물놀이를 함께 즐겼다. 입구에서 비 옷을 대여해주던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몸매를 원하십니까!' AB슬라이더에 연결된 물총은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 자에게 더 강한 물줄기를 선물해주었다. 이런저런 각종 놀이기구와 함께 놀다 보니 몸은 자연스럽게 물에 젖었지만 무더운 여름과 건조한 뉴질랜드의 기후가 함께 하니 옷은 자연스럽게 잘 말랐다. 유치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보내는 1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빽빽한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자연 그늘은 늦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하였고 놀이를 통해 간간히 적셔오는 몸은 숲 속의 열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건조되어 몸은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waterworks의 대표적인 놀이기구인 자전거 물총.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서 만들어진 압력으로 얼마나 멀리까지 물을 보낼 수 있는지 우리 가족은 서로 경쟁하듯이 운동하였다. 그 물을 피해 달아나는 연못의 오리들과 그 오리들을 따라가며 페달을 힘껏 밟는 두 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뜨거운 한 여름날에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운동으론 최고가 아닐까?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은 어찌 보면 정해진 시간과 공간이라는 속박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반복된 일상 즉 루틴이었다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떠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정해진 공간도 없는 오롯이 자유로운 시간이다. 우리 가족의 자유의지가 만들어낸 행보에 따라 멈추면 멈추는 데로 비가 오면 비를 피하며 그 나름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즐기는 가운데 우리 가족은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더 커져감을 느꼈다. 우리의 한 때는 이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었음을 그 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깨닫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렇게도 빛이 났구나...
우리 가족은 오늘의 메인 코스인 hot water beach로 향하는 2차전에 돌입했다. waterworks에서 보낸 시간으로 몸은 지쳐가고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자연이 만들어 낸 자연온천을 아이들에게 경험시켜주기 위해 분주히 차에 올라탔다. 핫 워터 비치는 뉴질랜드의 화산지대가 만든 고온의 온천수가 바다와 만나는 접경지에 있는 해변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노천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워낙 광활한 해변이기에 누구나 가족 온천탕을 만들어서 뜨거운 온천수에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자연이 주는 공공의 선물인 것이다.
https://www.thecoromandel.com/explore/hot-water-beach
1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드라이브하니 어느새 hot water beach에 도착했고 오늘따라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높았다.
입구에 있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삽을 대여한 후 (삽 한 자루에 대여료가 5NZ$ 정도)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해변을 향하여 몸을 옮겼다. 온천수가 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해변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물길은 얼음같이 차가워서 우리가 맞이할 온천수의 온도를 극적으로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은 돌아가며 삽질을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감하며 웅덩이를 삽으로 파기를 수십 차례, 삽질을 통해 퍼 낸 모래가 담벼락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자 모래바닥으로부터 뜨거운 용천수가 몽글몽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금 새 우리 가족이 만든 온천탕을 채우기 시작했다. 장유유서라고 집안의 어르신인 아내가 최초의 입수를 시도했지만 너무나도 뜨거운 용천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리 가족의 애만 태웠다. 안타깝지만 좌충우돌 우리의 첫 가족탕은 그렇게 폐기 처분되어야만 했다. 그제야 왜 사람들이 파도에 모래가 으스러짐에도 불구하고 해변가에서 땅을 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 뜨거운 용천수의 열기를 식혀줄 해수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우친 우리 가족은 파도가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곳을 찾아 두 번째 노천탕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발길을 옮겼다.
생활의 달인과 같이 삽질의 달인이 된 우리 가족은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가 눈앞에 있는 땅을 힘을 내어 파내기 시작했다. 가끔 강한 파도가 밀려와 우리의 노천탕의 기초를 망가뜨렸지만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외치며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의 등을 방패 삼아 온천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허약체질인 나의 가느다란 팔의 힘줄은 터질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뇌 속에 잠들어 있는 나의 참 자아의 외침이 내 입술을 통해 발현되려던 찰나 모래 바닥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뉴질랜드 코로만델의 용천수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만든 자연 욕조 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바닷물과 자연스럽게 섞인 용천수는 우리 가족의 오전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따뜻했고 저 멀리 불어오는 남극의 바람은 우리의 땀을 식혀주는 자연풍이 되었다. 천국을 만나는 순간이 멀리 있지 않았다. 참 노동을 통해 얻은 가치 있는 온천욕은 우리 가족에게 더 큰 만족감을 안겨주었고 뉴질랜드 정부는 자연이 아낌없이 전해주는 온천수를 뉴질랜드 정부는 수익모델로써 사용하지 않았다. 뉴질랜드라는 외딴섬은 이곳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이 주는 큰 기쁨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대인배의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결과 자연은 무차별적으로 훼손되지 않았으며 누구나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공공재로서 누릴 수 있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지속가능성에 관한 해답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배꼽시계를 통해 울리는 힘찬 알람 소리에 우리 가족은 그 좋다던 코로만델 온천욕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로토루아'로 가며 만나는 첫 번째 마을을 점심을 먹을 장소로 택한 우리 가족은 온천욕으로 나른해진 몸을 차에 태우고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어느 정도 도로를 달렸을까? 작고 깨끗한 마을이 등장했고 그 마을 이름은 Tairua란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한 우리 가족은 굶주린 하이에나가 되어 먹거리를 공급해줄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https://ko-kr.facebook.com/craftysouvlaki/
남섬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의 콜롬보 스트리트를 거닐다 보면 다양한 길거리 음식점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중에 그리스 음식인 수블라키 전문점이 있다.. 아니 19년 전에 있었다. 포장 전문점으로 나의 몹쓸 기억으론 당시 6~7NZ$(5000 원정도) 지불하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근사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파타라 불리는 그리스식 빵(화덕에 구운 도우랑 비슷하다고 할까?) 위에 새콤달콤한 소스가 버무려져 볶아진 큐브 스테이크와 각종 채소들이 올려지고 그 빵이 고깔콘처럼 만들어져 종이컵에 담기게 되는데 우리는 그 컵을 받아 들고 길을 걸어 다니면서 꼬치로 고기를 집어먹고 손으로 빵을 뜯어먹었다. 배고픈 가난한 학생들의 배를 효율적으로 채워주는 아주 고마운 음식이 바로 수블라키였다. 작은 기대감으로 우리는 잠시 서성거렸지만 오픈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탓에 사진만 찰칵 찍고 수블라키는 크라이스트처치가 최고일 것이란 망상을 하며 그곳을 떠났다. 한국에 와서 보니 수블라키를 탐하지 못함이 너무 아쉽다.
The Manaia is traditionally believed to be the messenger between the earthly world of mortals and the domain of the spirits, and its symbol is used as a guardian against evil.(마 나이아는 전통적으로 지상세계와 영혼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믿어지는 신화적인 창조물로 여겨졌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였다.) -wikipedia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교차로 한쪽 모서리에 이쁜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도 마오리 언어인듯한 가게여서 우리 가족은 오늘의 점심으로 배 님의 화를 다스릴 제물을 이곳에서 공수받기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한국의 블로거들이 다녀간 맛집인 듯했다..^^ 어차피 다니다 보면 그 길이 이 길이고 근처 맛집은 다 통하나 보다.. world class!!
가게 뒤를 돌아서 들어가니 주방과 연결되는 곳에 화덕이 놓여있었다. 아~~ 이곳은 화덕피자가 유명한 곳임을 깨닫고 우리는 메뉴를 정했다. 피자로!
짜잔~ 우리 가족은 화덕에서 구워진 바삭한 도우에 치즈가 가득 옮겨져 있는 뜨끈한 피자 두 판을 게걸스럽게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탄산을 먹지 못하는 촌스럽지만 고마운 우리 두 딸은 뉴질랜드의 블루베리가 잔뜩 갈려있는 생과일주스를 먹었다. 다음에 뉴질랜드를 찾게 되면 이 작은 마을에 하루 정도 머물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그날이 온다면 저녁엔 키위 맥주 한 병 들이키면서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란 상상도 곁들이면서...
화덕피자로 배를 든든히 채워서 위장 신을 만족시킨 우리 가족은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로토루아를 향해 출발했다. 이미 오후의 시간을 지난 탓에 서둘러도 오늘 체크인은 저녁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의 북섬의 유명 관광지로 유황온천과 휴화산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 관광으로 유명하다. 도시 입구를 들어서는 동시에 후각을 자극하는 유황냄새는 로토루아의 특징을 그대로 들어낼 수 있다. 19년 전에도 차를 몰아 로토루아를 방문했던 우리 부부는 입구에 들어섰을 때 당시를 기억해내었다. 우리 둘은 서로 상대방이 방귀를 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닌 로토루아라는 휴화산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 우리를 반겨주는 숨결이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제주도의 자연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높은 고산지대를 제외한다면-제주도도 한라산이라는 고산이 있긴 하지만- 넓은 평원과 자주 만나게 되는 해변은 제주도를 둘러싼 해안 도로와 많이 닮아있음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차를 운전하며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행복한 산책이 되기도 한다. 자연과 함께 하기에 피곤함이 덜 하며 눈이 즐거운 드라이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을 달려 우리는 유황 냄새가 반겨주는 마을 로토루아에 도착했다.
로토루아는 온천과 휴화산이 유명한 관광지로 한 때는 화산 폭발에 의해 작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던 곳이다. 우리 부부의 스무 살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 그때 머물렀던 숙박을 예약하기 위해 로토루아 톱 10 홀리데이파크를 예약하고자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만실이었다. 당시 우리는 로토루아의 온천을 즐기고 한국음식이 그리워 저녁으로 한국의 사발면을 먹었더랬다. 만실로 예약을 할 수 없었기에 우리의 여행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숙소를 근처로 변경해야 했고 그 결과 백패커스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백패커스(backpackers)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로 도미토리룸, 패밀리룸, 커플룸 등 다양한 방이 마련되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말한다. 배낭여행객들은 백패커스를 선호하며 이런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우정과 때로는 사랑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Funky Green Voyager Backpackers에서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캐빈 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방의 이틀을 샀다. Funky Green Voyager Backpackers.. 스무 살 당시 아내를 만난 곳도 백패커스였다. 당시 남섬에서는 귤 수확 시기였고 일자리가 필요했던 나는 남섬에 있는 작은 마을인 Roxbrough란 곳을 찾았다. Villarose란 이름의 시골마을 백패커스는 작은 목조주택 안에 도미토리룸 두 개가 복도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남성은 왼쪽 여성은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는 작은 백패커스 빌라 로즈 백패커스... 그곳에 눈부신 그녀가 있었고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따뜻한 물 한잔 마실래요?"
백패커스는 젊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 틈에서 조용한 가족여행객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청년시절 과감히 할 수 있는 즉흥적인 행동들이 고민과 고민을 통해서 상상 속에서 그치게 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그들과 공유할 수 없는 사고의 격차가 생겨버렸지만 서로 주고받은 따뜻한 눈빛을 통해서 이곳에 모인 모두는 뉴질랜드를 사랑하고 있는 자유인임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저녁거리를 마련할 수 없었던 탓에 우리는 시내 구경도 할 겸 다 함께 늦은 외출을 나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아낄 겸 직접 나가보면 우리의 침샘이 가려낼 옥석을 찾아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 탓인지 타운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내가 기억하는 뉴질랜드는 1차 산업국가이기에 전기요금이 상당히 비싸다고 했다. 인건비 역시 아마도 선진국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을 것이기에 저녁시간에 가게를 연다는 것은 그만큼의 매출이 보장되어 있어서 전기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불이 켜진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발견한 우리는 무언의 만장일치로 닫혀있는 문을 힘차게 밀며 가게로 들어갔다. "Is food available now?" 되지 않은 영어를 써가며 영업을 묻자 미소로 답한다. 우리 가족은 의미도 모르는 메뉴(재료가 영어로 되어 있어 도통 알 수가 없다.)들 중 이쁜 사진들을 골라 주문했고 눈으로 보기엔 기름지고 근사한 음식들이 우리 탁자에 차려졌다. 음식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눈으로 우선 맛을 음미했다. 색을 통해서 두 딸은 맛에 상상력을 발휘했고 기대감에 한 젓갈을 입으로 넣는 순간 어긋난 그들의 상상력은 미간을 통해서 진실을 토로했다. 우리 부부는 두 딸들에 비해 풍부한 인생 경험을 통해 중국음식과 타협할 수 있는 배포가 있었고 중년의 주린 배를 그럭저럭 채울 수 있었다. 우리 두 녀석들에겐 그 격차가 너무나도 컸기에 중국 음식을 먹기엔 버거웠을 것이다. 결국 많은 양의 음식이 남겨졌고 우리 가족은 무언가 쓸쓸함이 남아있는 배 속 어딘가의 공간을 손으로 느끼며 밤길을 걸어 숙소로 복귀했다. 조용한 로토루아의 밤거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숙소의 공동 거실은 음악 소리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우리 부부는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청춘을 추억했고 두 딸은 신기한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시리얼이 담긴 그릇에 우유를 부어주었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두 딸은 시리얼을 선택했다. 비록 오늘의 저녁식사는 만족스럽지 못했을지라도 오늘의 추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을 살아가며 겪게 될 수많은 경험들 속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온천수가 되어 우리의 삶을 감사로 가득하게 만들어줄 양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어딘가에 생생히 살아남아 우리 인생을 지켜줄 유산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로토루아의 첫날밤을 감사하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