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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곁에 있어준 너에게

삶이란 결국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by 두유진


<그저 곁에 있어준 너에게>두유진D.eugene


어느 해 질 녘,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시간. 햇살은 대지를 감싸 안듯 부드럽게 내려앉고, 풀잎 사이로 스며든 빛은 마치 살아 있는 숨결처럼 잔잔하게 일렁인다. 그 속에 두 마리의 사자가 있다. 하나는 어미, 하나는 새끼.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움직임도 없는 듯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온기가 흐르고 있다.


새끼 사자는 어미의 등 뒤에 조용히 다가와 앞발을 살포시 얹는다. 그 작은 발은 마치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미 사자는 고개를 들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지만, 그 시선 너머에는 아이를 향한 깊은 믿음과 세상을 향한 묵직한 책임이 동시에 실려 있다. 이 장면은 단지 야생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너무도 익숙한 감정의 풍경이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말없이 서로를 감싸 안는 두 존재의 모습에서 부모와 자식, 보호자와 아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말 없는 약속’을 깊이 사색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곁에 있어 주겠다는 다짐.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그 묵묵한 사랑의 언어.


부모라는 단어는 때로 무겁다. 보호자, 양육자, 책임자라는 말이 담고 있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고 깊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 안에 ‘온기’를 담고 싶었다.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일 같이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키려는 마음. 아이를 품에 안고 지켜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우고 위로를 받는 존재. 그래서 이 그림 속 어미 사자는 강인한 수호자이면서도, 아이로 인해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존재로 그렸다.


그림의 배경은 하루 중 가장 마법 같은 시간, ‘골든 아워’이다. 해가 지기 직전의 빛은 따뜻하고 포근하며, 동시에 하루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함께 품고 있다. 이 빛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시간과 닮아 있다.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이 찰나의 순간처럼, 우리의 삶도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자 어제를 보내는 이별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살아내며 성장한다.


아이의 앞발이 어미의 어깨를 감싸는 모습은 나에게 있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무엇보다도 솔직하고 진실한 표현. 이 작은 몸짓 하나에 의지와 신뢰, 그리고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애정이 스며 있다. 어미는 그 손길을 느끼며 오늘도 자신이 충분히 좋은 부모임을 확인한다. 아이 역시 그런 어미의 존재를 통해 세상이 믿을 만한 곳이라는 감각을 배워간다.


우리는 종종 부모의 사랑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돌보고, 가르치는 존재로서의 부모.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나 상호적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부모에게도 사랑을 준다. 그것은 말 한마디가 아닐 수도 있다. 웃음소리, 눈빛, 손길, 잠든 얼굴, 때로는 말 없는 기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삶이란 결국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친구, 연인, 선생님, 제자, 형제자매, 부모와 자식. 우리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한다. 때로는 서로의 거울이 되고, 때로는 지지대가 되어준다.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날에도 누군가의 존재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단지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의 초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사랑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이다.


‘그저 곁에 있어 준 너에게.’ 는 이 그림이 담고 있는 모든 감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무엇을 해주었는가보다, 곁에 있어 주었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화려한 말보다 조용한 동행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가 부모의 어깨에 손을 얹는 그 작고 소중한 순간처럼.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이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날, 길을 걸으며 손을 잡았던 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그 평범한 시간들. 그 기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우리 삶을 단단히 지탱하는 근간이 되어준다.


삶은 길고, 때로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순간들, 그저 함께한 그 시간들이 그 모든 혼란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이 그림이 당신의 기억 속 ‘작은 순간’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이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미 사자와 새끼 사자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오늘도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두유진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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