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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바다가 말을 걸었다

—Radiohead의 「No Surprises」를 들으며

by 두유진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 A job that slowly kills you…”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사는 고요하지만 날카롭고, 무표정하지만 슬프다.

마치 밤바다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감정을 알고 있는 바다.


그림 속 밤바다 앞에 선다.

회색빛 어둠과 희미한 등대의 불빛.

햇살 아래 찬란하던 바다는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잔잔함과 차가운 현실의 조각들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오히려 숨을 쉰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이 파도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린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던 말들이, 등대의 불빛에 묻혀 흘러간다.


Radiohead는 노래한다.

“No alarms and no surprises, please.”

Radiohead – No Surprises (1997)


A heart that’s full up like a landfill

A job that slowly kills you

Bruises that won’t heal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No alarms and no surprises, please


더는 놀라움도, 격한 파도도 필요 없다고.

그저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을 바라며, 삶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헬멧을 벗어던지고 싶다고.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살아가는 일이 종종 ‘버틴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는 순간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 안에 쓰레기처럼 쌓이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화’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오는 일상.


밤바다는 그런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말을 건다.

겉으론 고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출렁이고 있다.

마치 노래처럼, 조용한 멜로디 뒤에 가득 찬 무너지는 심장소리처럼.


“I’ll take a quiet life / A handshake of carbon monoxide”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사람들.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마음.

이 세상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싶을 만큼 지친 날들.


하지만 밤바다는 말한다.

그 끝처럼 보이는 수평선이, 사실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그림 속 등대는 작고 희미하지만, 가장 어두운 밤일수록 더 선명하게 빛난다.

그것이 누군가의 방향이 되고, 누군가의 마지막 위로가 된다.


나도 그런 존재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거창한 희망이 아니더라도,

아주 조용히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저 옆에 있음으로써 마음이 놓이는 등대 같은 사람.

이 세상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싶을 만큼 지친 그대에게 등대 같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밤바다는 끝이 아니다.

그곳은 오히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작점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또 다를 것이다.

어제의 바다와 내일의 바다가 다르듯이.


그 모든 변화는 바다의 잔잔한 파도처럼,

아무도 모르게 내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조용한 변화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밤바다.

그리고 Radiohead의 노래.

그 어떤 말보다 깊고,

그 어떤 위로보다 조용한,

나만의 속삭임.


“No alarms and no surprises…

Silent. Si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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