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 피해 4일차(주말)

함께 배우고 싶어서

by 소화록

대부분의 은행들이 토요일은 쉰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업무가 없다고 생각했고 잠깐 마음을 놓았다. 사기 피해를 당했던 카카오뱅크 계좌에 있는 돈을 새로 만든 농협 생활비 계좌로 옮긴 후에 피해 계좌는 해지해야겠다. 오늘 그것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카카오뱅크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계좌를 해지하더라도 기록들은 그대로 남아 다른 은행들처럼 피해구제신청이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은 후였다. 사기 피해를 당했어도 나는 일상을 이어나가야 했다. 토요일인 오늘은 오전에 아이를 위해 예약해 놓은 뮤지컬 공연이 있는 날이라 외출할 채비를 했다. 공연을 본 후에는 동생네 부부랑 같이 축제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를 잠식하는 무기력이 무서웠는데 밖으로 나갈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뮤지컬을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카페는 내가 사겠다며 집 근처로 이동했다. 음료와 빵을 결제하려는데 카페 직원이 새로 만든 내 카드가 결제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계좌이체 하겠다고 이체를 하려는데 그 역시 막혔다. 왜 그러지? 나도 모르는 새에 또 내가 내 계좌를 뭘 막아놨나? 새로운 계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혼란스러웠다. 한참 있다가 카카오뱅크에서 문자가 왔다. 미처 해지하지 못한 카카오뱅크 내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어 상대로 부터 지급정지를 당했다는 안내였다. 한마디로.. 범인들은 내 계좌번호를 사용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고 범인들에게 노출이 된(미처 해지하지 못한) 내 계좌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돈 10만원이 이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들은 주말도 없나보다. 돈을 위해 사람을 못 살게 구는 데에는 도가 텄구나 싶었다. 몇 시간만 일찍 부지런히 계좌 해지만 진행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후회가 막심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매여있으면 뭐하나.. 당장 대처를 해야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관련한 카카오뱅크 고객센터는 피해 신고만 주말에도 받고 그 외에, 나처럼 지급정지 된 건에 대해서는 평일 오전 9시부터만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카카오뱅크 계좌가 지급정지 된 것으로 인해 새로 만든 농협 내 계좌도 자유로운(비대면) 입출금 거래가 제한되었다. 한 계좌만 지급정지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현금이 없는 나는 주말 내내 1원도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이 치솟았다. 이제 돈이 필요하거나 거래를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은행 창고에 가서 직원을 통해 입출금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뒤이어 든 걱정은, 피해사실구제 요청을 하는데에 있어 지급정지 당한 이 상황이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였다.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나는 타의에 의해 막혀있는 이 상황을 월요일 9시가 되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이의제기 신청을 해야하고(나 역시 피해자다!를 말하기위해) 유선 전화로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고 3영업일 이내에 피해구제 신청을 서면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다음주 월요일은 나에게 아주 매우 바쁜 하루가 될 거라는 거였다.


아이를 등원하자마자 경찰서에 가서 사건사고사실 확인서를 떼고, 카카오뱅크에 전화해서 이의제기 신청을 하고,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에 피해구제요청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팩스로 보내고 우리은행, 농협중앙회, 지역농협, 전북은행 4개 은행사를 돌며 각각 피해구제신청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각 은행마다 진행 시간이 1시간 이내라면 하루안에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동시간과 예상 대기시간을 생각하면 ... 과연 이 모든걸 하루안에 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했다. 주말이라고 마음 놓고 있었던 나를 원망하고도 싶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빠르게 하루 안에 진행할 수 있는지 팁을 얻었다. 우선 서면으로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추가적으로 필요한 서류는 14일 이내로 보충해서 제출하면 되고 우선 경찰서에서 받은 사건사고확인서 먼저 제출하는 것을 추천받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다가오는 월요일이 두렵다. 마치 제한 시간 안에 불가능할 것 같은 미션을 완수해야하는 길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이다. 내게 있는 아이템은 몇 개인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한 시간 안에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짓눌린다.


아이를 유치부예배에 데려다주고 차 속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도에서 갑자기 숨이 텁 막히면서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숨을 헉헉헉 하며 크게 호흡하고 있었고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두 손이 덜덜 떨리는 증상이 보였다. 빨리 차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입으로 숨을 쉬며 차로 들어오자마자 상비약을 꺼내 한 알 먹었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루에 한번 정도. 갑자기, 불시에 일어나는 n번째 증상이다. 지피티한테 물어보니 공황장애 초기증상과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 이제 심장이 아무때나 빨리 뛰기 시작했다. 가벼운 몸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이 사회에서 젊은 연령층에 속하는 나도 이렇게 시간을 앞다투며 피해 복구를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데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어르신들은 이 모든일을 어떻게 대처하셨을까.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또 다른 슬픔을 알아버렸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나를 자꾸만 고개 숙이게 한다. 인생의 우여곡절과 수많은 풍파를 만나고 어떻게든 살아왔던 앞선 어르신들이 달리보인다. 그 분들의 몸에 새겨진 주름들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새겨져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해 보이고 못할 것 같고 무섭기만 한 일도 분명 사람 사는 일이니 어떻게든 흘러가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무너진 건 하늘이요, 해결될 실마리는 구멍 하나에 불과하지만 몇 주만 지나서 이 때를 돌아보면 큰 폭풍우 하나를 또 지나왔구나. 폭풍우를 멀리서 바라보며 그렇게 느낄 것 같다. 글을 쓰며 내 인생을 거리두고 바라본다. 다행이다. 고통이 나를 글쓰는 자리로 인도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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