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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녹 Sep 02. 2021

스마트스토어 의류 사입 도전기 - 접은 이유와 얻은 것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바야흐로 3년 전, 2018년 겨울.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했던 회사를 호기롭게 퇴사한 나는 "하고 싶은 걸 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의류 판매를 결심한다.

평소 옷을 좋아했던 나는 큰 고민 없이 옷을 팔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다소 즉흥적인 나는 의류 판매를 해볼까 생각한 다음 날 바로 세무서로 달려간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사업자 등록증과 통신판매업 신고를 해야 한다길래 일단 하고 봤다. 그리고 밤 12시,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으로 달려갔다.



동대문 도매시장의 밤


사진을 보니 다시금 떠오르는 그 때의 분위기와 그 풍경... 여긴 정말 신세계였다.

세상이 잠 든 자정이 넘은 시간, 이 곳은 그제서야 깨어나기 시작한다.


엄청난 인파와 오토바이, 화물 트럭, 담배연기, 그리고 다소 무서운 도매시장의 사장님들까지...

막차타고 가서 첫 차 뜰 때까지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옷 몇 벌을 야금 야금 사입해왔다.






그리고 의류 사입 외에도 옷걸이, 택배 봉투, 촬영천과 조명  은근히 사야할 것도 많았다.

맞다. 소소하게 여러가지 돈이 나갔다는 뜻이다.


사온 옷들을 입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처음에는 네O버 스마트 스토어가 아닌 블로그에 마켓을 열어 첫 판매를 진행했다.


첫 블로그 마켓을 통한 의류 판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초대박 큰 수익까지는 아니었지만(바라지도 않았음), 주변 지인들까지 많이 구매해준 덕분에 본전과 약간의 추가 수익까지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느낀 기분을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짜릿했다.

내가 직접 고르고 판매하는 옷이 팔린다는 것에 대한 엄청난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촬영본 보고 있었음


그리고 카드 결제의 편리함과 네O버 쇼핑의 효과를 보고자 스마트스토어도 개설하여 입점했다.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고 상품을 등록하니 신기하게도 검색을 통해 구입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스토어를 처음 개설하면 여기 저기 광고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그냥 거르는게 좋다. 거절 못하고 전화 받다가 1시간 넘게 통화한 사람 나야 나)



결론적으로 나는 약 6개월 간 의류 사입 및 판매를 하다가 접었다.

그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투자 시간 및 투자 노동 대비 저조한 수익률


1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은 정말 정말 해야할 일이 많다. 일단 자야할 시간인 새벽에 사입하러 가야하는 것 부터 그 넓은 도매 시장을 돌며 옷을 싸매서 와야하는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사입 후에는 촬영과 촬영본 셀렉&편집 작업, 상품별 상세페이지 작성과 상품 업로드, 주문 배송 처리, CS, 마케팅까지... 신경 써야할 것도 많고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촬영할 때 스튜디오를 빌릴 경우 스튜디오 대관료와 나의 촬영을 도와줄 지인을 섭외하고 그에 대한 감사 의미로 밥이라도 제대로 사야 했다.

이렇게 투자해야하는 노동과 시간은 많은데도 대박이 났다면 지속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


의류 사입 판매를 시작한 이유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고 한 것인데, 하고 보니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옷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판매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뭐든지 해봐야 안다고, 안했다면 몰랐을 나의 성향을 알게 됐다.




2. 사고 싶은 옷과 팔리는 옷 사이의 간극

온라인 쇼핑몰은 워낙 가격 경쟁이 심하다보니 이것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도매 시장에 사입을 나가보면 같은 디자인이어도 소재나 마감 차이로 인해 원가 차이도 꽤 많이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사고 싶은 옷은 원단과 마감, 디테일까지 모두 좋은 옷이었다. (실제로 만져보고 구매하니 아무래도 더 깐깐해진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옷들은 원가가 높아서 이미 비싼 원가에 마진까지 남긴다면 인터넷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다.


비싼 가격이 타당할 수 있게끔 상세페이지 내 품질을 강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상세히 읽어보지도 않을 뿐더러 가격이 비싸면 이미 클릭조차 안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인터넷 화면으로 이런 우수함을 전달하는 것에도 한계가 존재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언제부턴가 사고 싶은 옷이 아닌 팔릴 수 있는 옷을 고르고 있었다. 즉, 인터넷 경쟁에서 살아남아 판매될 수 있는 원가가 싼 옷을 찾고 있었다. 마음 속 깊이 올라오는 아쉬움은 뒤로 한 채로.


싸면서도 좋은 원단의 옷을 발견하는 기쁨도 물론 있었지만 어쨌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사고 싶은 옷과 팔리는 옷 사이에 생기는 간극에 나에게 어렵게 느껴진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3. 현금유동성 확보의 어려움

사실 현금 유동성 확보는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심지어 넉넉하지 못한 종잣돈으로 시작했던지라 더더욱 이 부분에 한계가 찾아왔다.


일단 사입할 땐 낱개 구매가 안되니, 복수 구매를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한번에 지출되는 사입 비용이 크고, 판매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보니 투자금 회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스토어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서는 정산 기간이 빠른 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판매 직후 정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잘 팔리는 의상이라 할지라도 시즌이 바뀌면 도매 거래처에서도 더이상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계절에 맞는 의류를 사입해와야 했다.

소량으로 판매하는 나같은 개인 사업자에게 계속해서 사입의 싸이클을 돌려야 한다는 점, 사입 후 마진 회수가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떨어져 자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의류 사입 판매 창업,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이유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엄청난 매출이 발생했다면 계속 했을 것이다. 잘 운영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모쪼록 나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보고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류사입 판매 창업,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적어본다.

위의 이유들로 나는 6개월만에 빠르게 접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난 단 1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나름 큰 시도이자 첫 창업이자 전환점이었던 소중한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1. 소비자 관점에서 사업자 관점으로의 생각 확장

장담하건데 이건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작게 시작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는내가 대표가 되어 일을 했다. 이 과정 속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 관점에서 먼저 생각해보는 프로세스를 익히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하고 이용했던 우리 일상 속 다양한 기업과 제품들, 지나치는 매장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생산자 입장으로 '비즈니스 구조'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됐다.


이건 나에게 있어 정말 엄청난 생각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고, 지금까지도 일과 삶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 핵심적인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이것을 얻은 것만으로도 백번 천번 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평가하리라.


2. 스마트스토어 생태계 경험


상품 등록, 키워드 잡는 법, CS 처리 등 스마트스토어에 대한 알고리즘과 생태계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 2018년 말 당시에도 '스마트스토어 레드오션이다'이런 말들이 많았는데, 지금 보면 그 당시 시작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잘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사임당, 창업다마고치...)


결국 이 역시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것 같다.

레드오션이 아닌게 뭐가 있을까. 그냥 내가 시도하고자 마음 먹은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결국 느낀다.



3. 시도를 통한 자기 발견, 다음을 위한 준비

사실 나는 은근 쫄보인데다 낯을 가려 도매시장 가는게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그 도매시장 특유의 기 쎈 느낌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건 아니고, 직접 사입이 아닌 모바일 어플을 통한 사입도 가능하지만 어쨌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입' 판매 방식은 초기 투자금이 들고, 이에 대한 재고 부담이 있다는 어려움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다음에 다시 온라인 판매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다른 방식을 궁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위탁판매라든지 구매대행이라든지..)


아무튼 나는 이 시도를 통해 나에 대한 또 하나의 발견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나를 더 잘 알고 나에게 더 잘 맞는 일을 찾는 것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해보고 싶은게 있다면 무작정 시도해 보길 바란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모든 시도는 성공과 실패 여부에 상관 없이 배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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