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를 줄여 '이.생.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을 만큼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 유행처럼 번져있다. 취업, 연애, 결혼, 심지어 내 집 마련까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시국에서 3포니 4포니 헬조선이니 하는 것들 모두가 이생망과 결을 같이하는 말일 것이다.
"내일은 없다, 욜로"를 외치던 20대의 나는 점점 더 어른의 현실이 느껴질수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무책임한 스스로를 반성하기보다는 이생망을 외치며 현실을 아니꼽게 바라보기도 했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이렇게 말하고 나면 현재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내 모습이 합리화되면서 자기 위로가 되었달까.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은 기분, 내가 제자리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앞서서 걷고 있는 기분. 누군가는 나에게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다고 위로 섞인 말을 건넬 수 있었겠지만 자신은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져서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암담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20대의 끝자락,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스물아홉이었다.
'망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이다. 아무리 현재 모습이 뽀대 나지 않을지라도 설마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날 만큼일까.
그러니까 당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생망러들은 사실 망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루틴한 틀을 깨고 나와 변화하는 것이 귀찮았을 뿐이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조던 피터슨은 "세상을 탓하기 전에 지금 당장 방부터 치워라." 말했다. 내가 변화하고 싶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해나가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조금씩 달라지기로 했다. 내가 꿈꿨던 이상적인 모습을 단지 꿈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근처에라도 다가가 보고 싶었다. 이번 생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끝장나지 않았으니까. 나에겐 치워야 할 내 방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정말 작은 일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매일매일 책 5분 읽기, 누워서 5분 운동하기, 5분 일찍 하루 시작하기. 그러면 그 전의 나보다 5분의 투자를 한 나는 분명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됐다. 중요한 건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됐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은 단 5분이면 되기에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비록 내가 꿈꾼 성공한 여성의 모습은 아니었을지라도, 내일은 없다며 욜로를 외치던 나의 20대가 있었기에 나는 놀고 싶으면 놀고, 충동적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내 모습이 있었기에 일어나는 법을 배웠고, 내면의 깊이가 깊어졌으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이.생.망.이라는 말은 이만 거두도록 하자.
아직 이생망을 외치는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에게 훈수를 두고자 함은 아니다. 개선 의지가 사라진 그 말속에는 두려움, 막막함, 무기력이 혼재되어 있는 말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어둠까지 결국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줄 수 있다는 태도의 전환을 가져보자.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해나가 보도록 하자.
이번 생은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우린 아직 망한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