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권태, 이루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란
모든 것엔 권태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더 슬픈 사실은 권태가 찾아옴과 동시에 그 대상이 내게 가지는 중요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연인들에게 권태가 찾아왔을 때를 생각해보자. 갑작스레 찾아온 권태에 혹자는 덤덤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불안해할 것이다. 전자라면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그 관계의 중요도가 낮아졌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고, 후자라면 그 관계가 나에게 가지는 중요성이 다시금 일깨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권태가 찾아왔을 때의 대처법을 아직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경계해야 하는 것은 권태가 왔다는 그 사실을 덮어버리고 이 시간을 그냥 견뎌보자고 위안하며 들춰보기를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권태로 인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사건들이 두렵고 겁날지라도 우리는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열정이 무제한일 수 없기에 어쩌면 권태가 찾아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만들어가는 것인데, 잘 가꿔주지 않으면 뿌리가 약해져 버려서 한순간에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관계'라는 것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언제까지 '소중한 존재'로 자리할 수 있는 것일까? 헤어짐이 다가오고 있는 사실이 느껴지고, '인연'을 지탱해주던 톱니바퀴가 더 이상 동력을 잃어가는 소리가 들려올 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질량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이제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것은 아닐까.
위의 사실이 우리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과연 권태로 인해 현재 내 관계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라며 다독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권태를 극복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닳아져 버리고 바닥을 보이는 열정이라는 것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 뜨겁게 노력하는 것은 답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냉철한 분석으로 그 관계가 왜 '권태'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겠다.
이에 더하여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인간관계에서의 권태에서 내가 배운 것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기'가 나를 가장 덜 쓸쓸하게 한다는 것. 염두에 두기 조차 싫은 '권태'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고, 곱씹어보기도 하면서 우리의 결론이 왜 '끝'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쓸쓸함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 자리에는 설렘이 오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자주 사용하는구나 하고 나 스스로를 알아간다거나, 다음번에는 이렇게 행동하는 게 더 좋겠다 하는 예상답안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그런 설렘 말이다.
결국에 권태는 너무도 쓸쓸한 기분을 안겨주지만, 그 극한의 쓸쓸함을 겪고 난 뒤에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권태를 극복한 관계는 RESTART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다시 튼튼한 관계를 가꿔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고, 한편으로 권태를 수용하고 끝을 맞이한 관계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꿈꾸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권태가 가져오는 그 극한의 쓸쓸함을 맛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