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함
예측할 수 없는 삶은 미지의 미래가 기다리는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항하고자 우리는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많은 경우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은 '나'의 선호이다.
자신이 만족할 만한 과정, 자신이 만족할 만할 결과, 자신이 만족할 만한 의미 등이 예상되는 선택이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이 된다.
때문에 나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갈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는 인간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학교에서부터 혹은 그 이전의 선택의 기회에서부터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혹은 그냥 별생각 없는데 주변 사람들의 압박으로 이러한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사회적인 압박이든, 개인적인 선택이든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파악하는 것의 중요함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다.
-나를 파악하는 것의 어려움
하지만 자신을 파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다양한 이유가 자신을 파악하는 일을 방해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강렬했지만 빈도는 낮았던 사건 속 우리의 모습이 정말 우리 모습이 맞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여러 가지 모습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한 가지로 표현되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들기도 한다.
또 애초에 인간은 온전한 기억을 떠올리는 존재가 아니기도 하다.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을 파악하지만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기억은 훼손되어 우리 자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우리가 이성적인 존재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착각일지도 모른다.
각종 비이성과 직관을 보여줘 인간이 비일관성과 모순덩어리임을 증명하는 연구들은 우리가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 있을 거라 믿고 발버둥 치는 모습 자체가 원숭이가 자아 찾기 하는 꼴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나를 파악하는 일
그럼에도 자신을 파악하는 일은 분명 그 기능을 한다.
물론 그것이 진짜 자신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찾아낸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쌓여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어쩌면 비이성적인 인간에게 '온전한 나'라는 것은 분명 허상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찾고자 한 노력은 쌓여서 그것처럼 살아온 나를 어느 정도는 구현해 준다.
결국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데는 분명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나를 파악하는 일은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을 그리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었고 또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경우 많은 특징을 가진 사람이지만 한동안 특별히 다루고 싶은 특징이 있다.
바로 내가 절제하는 사람이란 점이다.
-절제하는 남자
절제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겠으며 또 각각의 대상마다 다른 절제 방식이 있기에 한 마디로는 정의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분명 특정 사람의 형상이 그려지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 내 삶이 어떻게 절제와 관련 있는 지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 그 주변이 좀 통제되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나 자신이 일반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벗어나 극단치에 가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한 자극을 싫어한다.
너무 커다란 소리 때문에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너무 배불러서 계속 더부룩한 것 등을 싫어한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너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늘 어떤 한계선을 어느 정도 지정해 놓는다.
듣는 음악 크기,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 취미 생활, 휴식 등 모든 것이 적절한 선에서 이루어질수록 통제한다.
즉 이것들이 과하지 않도록 늘 절제를 한다.
비이성적일지는 몰라도 이런 자기 탐색 과정을 통해 유추해낸 '절제'는 내가 노력해서 찾은 내 특징이자 미래의 다양한 선택을 위해 수용한 선택의 기준이다.
하지만 절제하는 인간이란 기준으로 일관적인 선택을 하고 그 미래를 마주 하기에는 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절제'라는 것을 기준으로 일관된 선택을 했을 때 꼭 내가 바라고 또 나에게 유리한 결과만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절제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때문에 내 삶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때문에 '절제'라는 개념 자체를 먼저 고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어떤 일의 다면성
어떤 대상이든 한 가지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단어와 대상을 단순히 개념을 통해서가 아닌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파악하는 인간의 특징 때문이 이러한 일을 이끈다.
때문에 한 가지 단어에 대한 얘기를 나눠도 각각이 갖고 있는 생각이 다르다.
어떤 단어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어 너무 많은 개념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는 어떤 개념 자체가 사실 한 가지 측면만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낮에는 파란색인 바다가 밤에는 새까만 색이 되듯 한 가지 개념도 각종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측면을 가질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개념만 봐도 누군가는 헌신이 사랑임을, 우정이 사랑임을, 열정이 사랑임을 주장한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이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은 광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괴롭힌 이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사랑,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자 고의적으로 그의 다리를 모두 불구로 만들어 버린 사랑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개개인의 기억에 따라 사랑으로 정의되기도 하며 애초에 이 다양한 측면 모두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절제라는 개념
절제라는 개념 역시 다양한 측면이 있다.
특히 오랜 기간 다양한 영향으로 절제는 긍정적으로만 비쳐왔었고 또 나 역시 절제를 좋게 보고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절제라는 것이 생각보다 좋기만 하진 않은 복잡한 개념이란 생각이 생기고 있다.
절제의 장점은 모두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찝찝했던 점만 조금 나열하고자 한다.
우선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닐 때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충실한 현대인이 되고자 잠을 절제한다.
각종 성과에 비해서 내 몸이 어떻게 될까?
또 어떤 일을 참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자극을 완전히 끊고 흥미를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긴 시간, 음식을 절제해 왔기에 나는 가끔 먹는 것에 대한 흥미나 행복이 이전에 비해 완전히 덜해졌다고 느낀다.
남들에 비해 행복을 느낄 자극을 하나 잃은 나의 절제라는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조금 더 좋은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절제에 대한 다양한 점을 정리하고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절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과도 소통해보고 싶었다.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절제하고 또 그로 인한 다양한 결과를 마주한 나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앞서서 거창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조금은 가볍게 절제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