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여행
여행은 산과 같아서 정상을 지나면 내려와야 한다. 이야기로 치면, 첫 번째 욕망이 갈등과 장애물에 부딪쳐 부서지고, 주인공은 그 욕망의 잔재를 멍하니 바라보며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욕심이란 걸 서서히 깨닫지만, 동시에 길을 잃고만다. 영혼까지 살라먹을 것 같은 거친 숨에 시달리고 살가죽마저 벗겨낼 것 같은 뜨거운 땀마저 식어갈 때쯤, 잠시 멈춰 지난 일을 기억하게 된다. 언제나 해답은 과거에 숨어 있었다. 이 여행기記도 자신己을, 자신의 기억을 말言로써 쓰는 것이니, 나의 여행은 기억의 여행이었고, 기억은 물음으로 돌아선다.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
20241017.
충청을 지나 세로 진 소백을 넘어 경상의 땅, 대구에 발을 내디딘 것도 처음이었다. 사장동생은 원래 하던 일을 처리하러 포항으로 갔다. 동료들을 기다리자니 지루해 숙소 이름이 박힌 슬리퍼를 끌며 근처 두류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온기에 숨은 엷은 한기가 스쳐가면 팔에 손이 가긴 했지만, 아직은 반팔을 입어도 될 적당한 온도, 그 온도를 퐁당 옮겨다니는 미풍의 밤이기도 했다.
아늑한 나의 집을 떠나 일이 길어지면, 생활이 없어지며 갇혀 있는 듯하다. 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예방주사처럼 선택한 것이 일과 후 동료들과 잠깐의 이별이었다. 근처 어디로든 탈출했던 것이 소소한 여행이 되었다. 이 또한 여행의 시작, 엇갈림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일을 시작한 지 이틀째 공주에서의 산책을 시작으로 충청과 경북을 오가는 일 사이에 여행이 끼어든 셈이었다. 혼자 밖에 없다고 메아리치던 집을 떠나, 어떤 실의가 싸지른 퀴퀴한 답답함에서 멀어지기 위해 물음도 답도 없는 여행이었지만, 애초에 답답함을 벗어나려 했기에 그 어때보다 답과 답을 바랬는지 모른다. 그렇게 일과 후 여행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밤의 시작에서 솟아 나왔다. 허나, 밤은 여행의 기본이 아니다. 멋진 곳은 해가 있는 낮에 잘 보이고, 그곳에 밤에 가기엔 도시와 거리가 먼 곳인데, 밤의 여행이라니. 대신 나에게 다가온 밤의 사위와 정감을 받아들였고, 일이 없는 중간의 휴무에 부족했던 낮의 멋을 채웠다.
솜이불 같은 저 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자니 부모님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 밥은 먹었냐.
- 밤에 돌아댕기지 마라, 잉.
내 아버지와 어미니의 같은 말씀이다. 당신의 같은 말은 언제라도 지루하지 않고 같은 온도로 느껴진다. 밥을 먹지 못했지만, 밥을 먹었다고 했다. 맨날 밤에 싸돌아다니면서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왜 매번 당신들의 말씀에 제대로 된 답도 못하고 자그마한 원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별 것도 아닌데, 별스런 무력감이 압정처럼 발끝을 눌렀고, 시선을 피하듯 사위를 둘러봤다. 뺨을 할퀴듯 바람이 무얼 찾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집 밖에 나와 있고 밤에 있고 잠시 길을 잃은 것이다.
고향집을 떠난 지금도 여행 중이며 가출家出이자 출가出家를 오가고 있다. 이 모든 행위는 외출이며, 집을 나왔으니 길을 잃는 연유가 된다. 외출이 어떤 목적이냐와 상관없이 몸과 영혼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여행은 보통 내 몸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며, 가출은 내 몸이 돌아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출가는 내 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여행은 내 영혼 일부가 여행지에 심어지고, 가출은 내 영혼을 아직 집에 두고 왔으며, 출가는 내 영혼이 새로운 집을 찾는다. 집은 '짓다', 이며 짓다, 는 '만들다', 이다. 집을 짓고 그곳에서 밥을 짓고 옷을 만들고 자식을 낳는다. 집 속에서 짓고 만들던 모든 것이 나를 안고 있다. 그 안고 싶음이 나에게는 아름다움이었는데, 집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 기분과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내 앞에 버드나무가 나타났다. 그랬다. 내 아름다움은 나무에서 비롯되었다.
큰 나무를 보면 팔을 벌려 아름 했고, '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아름다움이 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무엇이 진짜 아름다움인지는 알 수 없다. 안음은 내 안으로 영혼을 빨려들어가게 한다. 그 순간 시간을 멈추고 자신을 찾고 '사람다움' 속에서 피어나는 더 '나다움'을 만나게 된다. 때론 아름다움의 모사인 예술을 아름다움이라 착각하지만, 아름다움은 애초에 예술의 틀에 갇힐 수 없는 것이다. 삼길포항의 물빛처럼 그 시공 속에 있어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것이며 순간의 하나이다. 순간 속에 벌거벗은 채로 불쑥 튀어나오는 아름다움은 야하고 적나라하며 본능적이기도 한 것이 몸부림치는 생명만큼 두려움이 들고 낯선 위협이 되어, 아름다움 앞에서도 한걸음 물러서고 만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했을 때 놀라고 밤잠까지 설치는 흥분과 기억마저 뒤섞이는 혼돈 속에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걸 참아내고 아름다움의 생명을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알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삶인지라도, 한켠에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가슴에 대못을 치며 나를 가두고 견뎌내는 것도 또한 아름다움의 길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것의 위안처럼 외롭고 고통스럽고 절망한다 하여 아름다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순간에 이미 찾아왔듯, 삼길포항의 아침 미소처럼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할 때, 열린 마음 틈으로 불현듯 찾아와 나를 살려준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매 순간 사라지기를 금치 않았고, 이전의 아름다움은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찾는 아름다움은 가짜이면서 진짜 같고 진짜이면서 가짜 같은 순간들의 기묘한 포옹이자 숨바꼭질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며 걷고 걸어도 사장동생의 연락이 없어 전화를 했는데, 포항 어느 외진 곳에 차가 웅덩이에 빠졌다고 했다. 그제야 다리도 아프고 피곤함이 몰려왔는데, 이유는 여행의 기본,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빵을 찾아 돌아다녔다. 낡은 멋도 기억해야 할 역사도 없는, 새 것만이 유일한 가치로 사로집힌 도시에 숙소를 잡으면 더더욱 그랬다. 일명 빵지순례라는 것인데, 전에는 밥값만큼 비싼 빵도 탐탁지 않아 했고, 당연히 빵지순례도 비난했다. 이번 여행에서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것이 달콤한 빵이 되고 보니, 이 모든 나의 비난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도 과거의 나인 너와 지금의 내가 우리가 되는 행복일 것이다. 빵을 물고 서서히 중독되던 그 밤, 불현듯 그래 웃자,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괜히 울고 싶은 밤이었지만.
잠들기 전, 가로등이 비치는 숙소의 천장을 보니, '아름다움, 여행, 집, 행복, 연결'이란 말들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 내 주위를 위성처럼 떠돌고 있었다. 어쩌면 진짜 욕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