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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ison Lee Aug 03. 2021

Impression, 그리고 Expression

아동기의 음악 교육

나는 예술을 전공한 자가 아니고, 이미 초등 고학년인 큰 아이와 둘째를 보아하니 이 아이들도 딱히 음악을 할 재능은 아닌 것 같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부나 착실히 시키면 될 걸 시간도 여유도 넉넉지 않은데 굳이 악기 레슨을 고집하는 이유는,


1. 아동기의 두뇌 발달


대뇌 신경 세포 가지synapse의 발달은 대개 초등 교육을 마치는 나이까지 공격적으로 연결되거나 혹은 소거된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의 기능 또한 이를 유사하게 반영하며 발달한다.


이 시기에 다양한 경험과 노출, 그리고 자극이 필요한 이유인데,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신체의 최소 두 부분 이상을 다른 방식으로 동시에 조작하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므로 대근육의 톤 유지와 소근육의 미세한 조절, 온몸의 조화로운 움직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눈은 악보를 읽고, 귀는 내가 만들어 내거나 혹은 타인과 맞추어야 할 소리를 들으며, 머리는 같은 곡을 반복해 연습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악보를 통째로 기억하니 악기 연주만큼 두뇌와 신체의 모든 부분을 동시에 유기적으로 훈련시키는 과목은 또 찾아보기 어렵다. (페달을 사용하는 악기들은 심지어 발도 사용한다!) 게다가 그 모든 과정을 지구력 있게 훈련해야 하므로 좋은 자세와 집중력은 덤이다.


2. 디테일과 스케일


연습을 하다 보면 기교건 표현이건 어디엔가 반드시 막히는 부분이 나타나고야 만다.

그 한 프레이즈, 한 마디, 심지어 하나의 쉼표를 위해 수십 번, 수 시간, 며칠 이상을 집중하고 반복해 차이를 만들어 내는 훈련은 연주 공부를 통해 가장 손쉽고 불가피하게 경험된다.

음악적 완성을 위한 디테일에의 천착은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사소해 보이는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그 벽을 깨는 순간의 황홀함이 얼마나 큰 지를 저절로 깨닫게 한다.


반대로 스케일에 대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갈 때에 한 분야의 거장들이 이룬 압도적 성취를 직접 경험할 일은 많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피부로 바로 와닿는 경험은 더욱 희소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좋겠지만, 본인이 연주 해 본 작품이거나 진지하게 공부해 본 작곡가의 곡인 경우에는 그저 듣기에 좋다는 정도를 넘어 지금 이 연주자가 얼마나 놀랍도록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탄생시키고 있는지 감탄하고 또 좌절하는 경험이 반복된다.


완성을 위한 디테일에의 몰입과

내가 평생에 가도 닿을 수 없는 수준에의 존경과 동경.


이것은 음악이 아니고서는 동시에 경험하기 어려운 예술성이며 그 예술성은 결국 자신이 경주하고자 하는 또 다른 영역에 적용되었을 때 독보적인 섬세함과 탁월함에의 추구, 그리하여 쉽게 안주하지 않는 동력으로 꽃 피게 된다.


3. 새로운 언어의 사용


음악을 처음 배울 때는 악보를 '읽기'에서 시작해 곡이 익숙해짐에 따라 악보를 '암기'하게 되고, 이후 곡을 '공부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우리가 책이나 문자로 하는 학습과 거의 동일한 순서로 진행되는데 오선지 위의 음료와 다양한 음악 기호들은 완벽하게 새로운 언어로 기능하여 새로운 암호를 터득하는 방법을 습득시킨다.

수학적인 연결성까지를 당장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언어를 벗어난  'note'에 대한 해독-해석력을 익히는 것은 이후 새로운 문자나 수, 과학적 기호에 보다 직관적이고도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나아가 Bach 등 고전 음악가들의 작품을 차례로 공부하다 보면 2 성부, 3 성부 혹은 그 이상의 서로 다른 주제들이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대화하는 듯한 희곡적 전개를 보이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과정 중에 각 주제의 대위/반복/모방/변주/전위 등을 통한 표현의 다양성을 배운다.

더욱이 소나타, 론도, 푸가 등의 악곡 형식을 통해서는 하나의 '글'에 상응하는 언어적 설득력까지 담게 되므로 이 시기의 음악 교육은 음악사, 그리고 문학과 결합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4. 취향과 안목


앞서 말한 부분들은 사실 어느 정도 교육자의 취향을 타는 것이기도 하고, 개개인이 살아가는 데 대단히 필수적인 기능은 아니어서 견해와 방법론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고전 음악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히게끔 유도하는 개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고 싶어서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만이 고상한 취미라는 뜻이 아니라, 가급적 '' 말초적인 취향을 넌지시 일깨워 주기에 수월한 시기가 바로 유아기와 초등 학령기이기 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춘기에 결국 대중문화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순간이 온다.*

그 예민한 시기에 스스로 선택한 '취향'은 음악에서 끝나지 않고 영화로 인터넷으로 SNS로, 결국 현실로 반영되며 이후 개개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정서와 기호, 나아가 대인관계와 삶의 태도를 지배한다.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아이들은 당연히 Bach 대신 BTS 듣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아 숨 쉬는 것들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 잠잠하고 꾸준히 흐르는 시간과 그런 가치가 있다는 , 그리고 그건 삶과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조용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싶다.


거기에 하나만  욕심내자면, 어려서부터 예술적 유산과 함께 내밀히 쌓은 추억이 그들의 인생을 관통하며 삶의 기쁜 순간과 고단한 순간에 좋은 벗이 되어 주기를.


(*사족 :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또래 집단과 함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시간과 과정은 분명히 긍정적이며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대중문화 자체도 명백히 훌륭한 예술이나 그 영향력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게추를 빼는 것이다.)


5. Impression, 그리고 Expression


음악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결국 사람과, 세상과, 배움에 대한 존중과 열정이 아닐까. 그 앎이 조금이나마 즐거웠으면, 그 과정이 가능한 한 아름다웠으면, 그 결과가 되도록 따뜻했으면.


이것이 내가 음악을 먼저 가르치는 이유.


(... 그러니까 얘들아, 제발 연습 좀 하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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