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은 의사라면, 특히 재활의학과 의사라면 익숙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떠한 환자이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부분이 얼마나 손상을 입었고 기능의 저하가 어느 정도로 일어났는지에 따라서 예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뭐, 통계적인 자료에 입각해서 대답을 하면 될 일이다.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감정을 오롯이 배제하면 말이다. 위처럼 걸을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 "손상부위도 크지 않고 현재 하지의 근력저하도 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으면 3개월 안에는 거의 이전처럼 걸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워낙 회복이 힘들다고 알려진 소뇌의 손상이 의심되는 상태이고, 그로 인한 실조증도 심한 상황이어서 앞으로 평생 보행 보조기구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와 같이 부정적인 답변을 드려야 할 경우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재활치료가 의미가 전혀 없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일상생활 복귀를 위한 재활의학과인데, 앞으로 명백한 기능의 향상을 관찰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을 전할 때에는 의사고 환자고 모두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환자와 보호자를 끝없는 희망과 절망의 톱니바퀴 위로 몰아넣는 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상황을 아예 회피해야 할 것이냐? 그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어떤 환자와 보호자는 예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의사가 먼저 예후에 대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는, 치료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은 기능회복을 위한 재활치료를 시행하면서도,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 치료 과정에서 현재의 장애에 적응하여 일상생활동작을 수행하는 방법을 교육받아야 하고, 보조기 처방이나 집안 환경 개선 등에 대해 미리 준비하며, 추후 전원할 병원도 급성기 병원보다는 아급성기나 만성기 병원으로 알아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다. 본인의 회복이 이 정도까지나 되겠구나 하고 예상되는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치료자에 대한 믿음, 치료과정에 대한 순응도 측면에서 더 좋을 수밖에 없다. 회복 가능성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품었다가 성취하지 못하는 경험이 얼마나 실망감을 안겨줄 것인지는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는, 약간은 매정하게 보일 이유인데, 의사는 자신의 말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의 현재 상태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서 최대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능하다고 예상되는 최대한의 회복 상태를 재활치료의 목표로 두고, 이에 대해 환자 및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치료 초반부에 정말 중요한 일이 된다.
재활의학과 전공의 1년차를 보내는 동안 재활치료의 목표를 이해시키는 것은 항상 어려웠다. 객관적으로 보면 회복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그게 막상 나 또는 가족과 연관된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예후에 대해서 단 한 번 말해준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실낱같은 기적의 확률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하루하루 뭔가 나아진 점이 조금이라도 없나 찾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곤혹스럽더라도 주기적으로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대화가 오가야 한다. 설령 그로 인해 환자의 정서적인 면에 문제가 생겨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게 되더라도 말이다. 우리 재활의학과의 일은 현재 환자의 상태로부터 최대한으로 일상생활 적응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현실적인 목표를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안 좋은 예후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설명할걸 하는 후회를 절실하게 한 사례가 하나 있다.
그 환자분은 사고에 의한 외상성 뇌손상 이후 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약 5개월가량 받은 뒤 우리 병원으로 전원 된 분이었다. 워낙 출혈이 광범위하였기 때문에 신경외과적 수술도 한 차례 받았고, 장애의 정도가 극심한 상태였다. 스스로 거동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고, 말소리도 내지 못하며, 섭식도 비위관(콧줄)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분에게 있어 큰 문제는 양 발목의 경직이었다. (배경 지식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의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합병증 중 하나로, 관절을 움직일 때 근육의 긴장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경직이라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게 진행되면 관절의 가동범위가 좁아지고, 좁아진 상태에서 굳어지는 구축까지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팔을 구부렸다 펴거나, 발등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거나 하는 동작이 뻑뻑해지고 종국에는 제한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아킬레스건이 짧아지고 발등이 완전히 아래로 꺾여, 이대로 세운다면 발꿈치가 절대로 땅에 닿을 수 없는 형상이었다. 보호자분이 원하는 것은 이에 대한 해결이었다. 나중에 환자분이 일어설 수 있게 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발목을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워낙 광범위한 손상에 의해 진행된 합병증이고, 관절이 꺾인 상태로 수개월이 지난 상태였으며, 이전 병원에서 항경직약을 증량하고 보톡스 주사를 놓는 등의 시도를 이미 했음에도 반응이 거의 없었던 점으로 보아, 일시적인 효과라도 기대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선 보호자분께 말씀을 드리고, 입원치료를 하기로 하긴 했으므로 재활치료가 시작은 되었다. 그러나 거의 굳어버린 발목관절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수동적으로 관절을 움직여주는 것은 어느 정도 근육이 늘어날 수 있을 때에 가능한데, 외부적인 힘을 가해도 발목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전에 시행하였던 보톡스 주사 대신 신경차단술도 시행해 보았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발목의 경직을 해결한다고 해서, 그렇게 심한 뇌손상을 입은 환자분이 스스로 보행을 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희박한 것이었다. 사실상 모든 치료과정이 과도한 기대감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퇴원일이 가까워짐에도 호전이 거의 없자 보호자분이 예후 및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다시 물어보셨고, 나는 다시 예후는 좋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렸으며, 앞으로는 이 상태에서 일상생활에 적응할 능력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달드렸다. 그때 보호자분의 기대와 희망은 내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여러 번일지라도 보호자분께 다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보호자분이 지금 이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 시기에 나는 환자분과 보호자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큰 상태였고, 따라서 초반에 예후에 대해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 얘기를 반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안 그래도 힘든데 안 좋은 얘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것이 무엇이 좋을까 했던 것인데,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어쩌면 결과적으로는 환자와 보호자의 불안감과 절망감만 가중시키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더 미리 시작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초반부터 목표를 다르게 설정하고, 발목에 집중하는 대신에 몸통의 근력 강화나, 그나마 어느 정도 움직이던 왼팔을 이용한 기능적인 움직임 훈련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을 잠시 누르고 알맞은 목표를 세우는 데에 조금 더 집중을 했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