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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재 Sep 27. 2021

거절을 대하는 자세


"죄송합니다. 좋은 인연 만나세요!"



소개팅을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거절을 마주하게 되지만 거절은 항상 불편하다. 말하는 사람은 미안한 마음에, 듣는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어 서로 괴로움에 빠진다. 그러나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녀가 만나, 몇 번의 데이트만으로 연인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기적에 가까울 테니.


거절의 이유는 다양하다. 헤어진 지 오래되지 않아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했다거나, 이전의 연애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했을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단순히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거절의 표현만큼은 반드시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거절을 겪다 보면 상대가 눈치채주길 바라며 은연중에 의사를 내비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이때 상대방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 '카톡을 보냈는데 소개팅녀가 12시간 동안 답이 없어요. 포기해야 할까요?'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누군가는 '그 정도 했으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연애 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을 땐 쉬워 보이는 것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부턴 앞이 캄캄해진다. 그것이 거절의 의미라는 걸 깨닫게 될 때까지 겪는 스트레스와 감정 소모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내가 만난 A처럼.





“약속을 잡자는 카톡에 왜 자꾸만 답이 없니”



A는 외적인 이상형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받자마자 '아니 이분이 하신다고?'를 외칠 만큼. 연락처를 받고, 퇴근 시간에 맞춰 뻔하디뻔한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고 연락드린 00입니다. 퇴근하셨어요~?'


의외로 답이 빨리 왔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었다. 시간을 정하자는 나의 카톡에 그녀는 다음날까지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사진을 보고 소개팅을 한다 했을 텐데 도대체 왜?' 주선자는 “바빴겠지, 다시 한번 연락해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찜찜했지만 아쉬운 대로 다시 한번 연락을 했다.


이번엔 답장이 왔다. 어제저녁 약속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여차여차 날짜를 잡고, 장소를 물었다. '6시에 여기 괜찮으세요?' 그러나 또다시 반복된 무시. 애프터 신청도 아니었고, 약속을 잡자는 카톡이었을 뿐이다. 경험해본 적 없는 무례함에 곧바로 연락처를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주쯤 지나서였을까.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카톡이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집에 급히 내려갈 일이 생겨서요. 날짜를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A였다. 그날은 우리가 보기로 했던 날이었다. 마지막까지 비겁한 모습에 기가 찬 나머지 '그렇게 하세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락이 왔냐고? 물론 아니다. A 씨, 잘살고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집에서 못 돌아오신 건 아니죠?




A는 막상 소개를 받고 나니 귀찮아졌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만 주선자를 통해서라도 언질을 주었다면 이토록 기분 나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중하고 솔직한 거절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의 감정과 시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 말이다.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밀린 숙제처럼 거절을 미루곤 한다. 그러나 솔직한 거절은 상대가 미련 없이 마음을 접고 털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애매한 처신은 미안해야 할 이유를 또 하나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새로운 사람을 찾아갈 수 있도록 떠나보내 주는 것. 그것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소개팅에 참여한 상대에 대한 배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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