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찾아 오는 것
AM 06:40
갑작스러운 이별에 밤을 꼬박 지새웠다. 심장에 바위가 올려진 기분에 몸을 일으키는 것 마저도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벗어나야만 했다. 출근은 해야 했으니까.
제발 꿈이었으면
그런 날이 있었다. 악몽을 꾸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지는 꿈을 꿨던 날. 너무 놀라 잠에서 깨고 나서야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날. 전화를 걸어 이런 꿈도 꿨었다고, 너무 생생해 슬펐다고, 말하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눈을 감았다 떠 보아도 이곳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자꾸만 힘이 풀리는 몸을 이끌고, 어떻게 출근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무실에 도착해 메일함을 열었을 땐, 검은색 글자가 먹물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움에 눈을 깜빡여도 보고,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보기도 했지만, 마음이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괜찮은 척 전화를 받아가며 업무에 집중하려 해도, 분초 단위로 빈틈을 파고드는 상실감과 슬픔에 숨이 턱- 막혀왔다.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외로움은 두렵기조차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운 건, 상대방이 깊게 스며들어 있던 나의 일상을 이젠 혼자만의 힘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의 아침인사도, 점심은 뭘 먹었냐는 안부도, 주말엔 어딜 가서 무얼 하자는 평범한 대화들이 모두 사라진 일상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상대에게 맞춰진 나의 시간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선 당분간의 시차적응이 필요했다.
살다 보면 제법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게 된다. 경험을 통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슬픔과 아픔도 어느샌가 잊혀질 것이라는 건 분명 알고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까닭은 함께였던 우리가 이젠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다시 볼 수 없는 남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뒤늦은 후회는 늘 헤어지고 나서야 찾아온다.
하지만 이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사실도 있다.
첫째, 사랑은 유한하며,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
지금 보다 조금 더 어렸던, 그러니까 연애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에는 연애와 사랑이 동의어라 생각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라고.
그런데 몇 번의 헤어짐과 아픔을 겪고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는데, 바로 연애는 호감에서 시작해 서로에게 '빠지는' 감정이라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호감에서 피어난 감정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주고, 노력해야 하는 게 사랑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설레는 감정도 어느 순간 무뎌지는 때가 분명 찾아온다. 도파민이 줄어들고,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기 말이다. 상대방과 나의 본래 모습이 나타나는 그 변곡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대화와 교감이다.
'맞춰간다'는 말의 의미도 결국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뜻한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서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소소한 대화들은 관계를 더 단단히 만든다. 돌이켜 보면 익숙함을 신뢰로 착각하는 순간, 관계가 금이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랑에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이별의 원인은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혹은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진다면 운명처럼 시작한 만남도 끝을 다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유한하다. 영원하지도 않다. 단지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둘째, 아파한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 그 필요성을 스스로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
그동안엔 헤어지고 난 뒤에 이별의 원인을 대부분 상대방에게서 찾았다. '이 부분이 맞지 않아서, 저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란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다 보니, 결국 모든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같은 이유로 비슷한 이별을 거듭 했단 사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관계에도 오답노트가 필요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오래 전부터 묵혀왔던 부끄러움과, 나의 부족했던 모습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었다. 상대는 계속 시그널을 주고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지쳐 관계를 놓게 된 것뿐.
실연의 고통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헤어진 뒤엔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갖고,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감정이 추스려지고,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이별의 원인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잘못한 부분을 깨닫고 나니 비로소 나의 어떤 부분이 상대방을 힘들게 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에도 오답노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실연의 아픔은
성숙한 연애를 위한
준비였다.
지나간 이별들을 떠올리면 후련할 때도, 여전히 마음이 시큰거릴 때도 있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이 복잡한 생각으로 귀결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픔을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라고, 그만큼 좋아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변명하며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사랑했던 만큼 남김없이 아파하는 것 또한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이니까.
그리고 다짐했다. 또 다시 인연이 나타났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후회가 되지 않을 만큼 내 모든 것을 바쳐 열렬히 사랑을 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