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리자로서 보기 쉽지 않은, 낮디 낮은 자세로 말씀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보며 올 한 해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신입생들의 상태(?)가 더 심각해진다는 말을 듣고 대체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 강사에게 어렵게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 작년에 본 바로는 워낙 밝고 당찬 아이들이었는데, 강사들을 존중해 주시는 분이기에 이번에도 별일 아닌데 우리에게 공손하게 말씀해 주시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에이, 심해봤자겠지 뭐, 어린애들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라는 나의 생각은. 교만이었다.
예정된 협의회 날짜보다 일찍 담당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긴급하게 강사님들을 투입해야 할 것 같다고. 너무 급하게 연락드려 죄송하다는 선생님께 괜찮다는 말로 안심시켜 드린다. 집에서 노느니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 싶었으니까.
올해 1학년은 다섯 반이고, 각 반마다 특수 아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더 놀라운 건 그중 쌍둥이 아이가 둘이라는 것. 쌍둥이가 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야 뭐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특수 아이 5명 중 쌍둥이가 둘이라니...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그 아이들의 엄마가 궁금해진다. 쌍둥이를 키워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둘 다 특수 아이라니. 아이를 키우며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까. 게다가 그런 가정이 둘이나 있다니. 아이 둘 다 특수아이다 보니 아이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신다는 말씀을 듣는데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20명이 넘는 아이들의 학습권도 중요하다는 말씀에 어깨가 조금은 무거워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한편으론 어떤 아이일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1학년 교실에 들어선다.
아직 유치원생 티를 다 벗어내지 못한 귀여운 아이들. 엄마 닭을 졸졸 쫓아다니는 병아리들 마냥 담임 선생님 뒤를 따라다니며 “이거 어떻게 해요? 선생님 이제 뭐 해요?”를 끊임없이 묻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외투 벗어서 개는 방법, 사물함 정리하는 방법, 신발장 정리하는 방법.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시는 담임 선생님을 보며 초등학교 선생님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아이들, 봄날에 활짝 핀 개나리 같은 아이들 사이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아이가 보인다. 특수 아이 다섯 명 중 가장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고 하셨는데 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겉보기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옷차림도 멀끔하고 깔끔한 외모를 가진 아이. 엄마가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그려진다.
아이 옆에 앉아 말을 건네본다. 하지만 이내 공중으로 소리 없이 흩어지는 나의 말소리. 앗. 조금 당황스럽다.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될 거라곤 생각 못 했었는데. 수업이 시작되고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의 몸짓 하나, 목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반면 이 아이는 책상 위 스케치북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본인만의 규칙대로(빨주노초파보분갈검) 색깔을 골라 무엇인지 모를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래, 이렇게만 있어준다면, 다른 아이들의 학습을 방해하지 않기만 한다면 교장선생님께서 걱정하신 것만큼 어렵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치 나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 역시 경주마처럼 뛰어나간 아이 뒤를 쫓아 나간다. 고요한 복도를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 뒤를 쫓아가며 아, 올해는 필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작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필라테스를 해야 하나 아니면 헬스를 해야 하나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복도를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는 아이 뒤를 쫓아다니기를 마친 뒤 이제는 교실로 들어가자며 아이 손을 잡고 조용히 교실로 들어간다. 휴, 숨이 차다.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다른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숨을 고르는 순간.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소리를 지르는 아이. 오 마이 갓!
“쉿!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지.”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가져다 대며 아이에게만 들리도록 이야기하는데 순간 내 손을 홱 낚아채더니 꼬집기 시작한다.
“아얏! 그렇게 꼬집으면 선생님 아파.”
“아파? 아파?”
“00이, 왜, 어디가 아프니?”
담임 선생님 말에 괜히 내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땀이 난다. 이게 긴장해서 나는 땀일까 뛰고 나서 흘리는 땀일까. 하, 나도 모르겠다.
‘선생님,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잘 참았다.
어찌어찌 아이를 잘 달래서 소리 지르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고 착석할 수 있도록 한다. 안아도 줬다가 무릎 위에 앉혀도 봤다가 토닥거리기도 했다가,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그런 나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문득 아이 엄마가 떠 오른다.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오며 가며 마주칠 일도 없었을 아이의 엄마. 두 아이 모두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이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한다면 일을 하면서도 학교에 있을 두 아들 걱정에 일이 온전히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치원과 학교는 확연히 다른 곳이니까 어쩌면 이 엄마도 3월 한 달 내내 긴장의 시간이지 않을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같이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물론 특수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조금은 안심시켜주고 싶다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내가 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아이 걱정 없이 엄마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강사 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한 번 해본다. 바닥에 주저앉고 자기 집 안방 마냥 드러누울 때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가 복도레이싱을 벌이고, 마음에 안 들면 때리기도, 꼬집기도 하는 아이지만 나는 하루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만 보면 되니까. 그 시간만큼은 내가 조금 더 보듬어 주고 싶다는 아무도 듣지도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는 그렇지만 꼭 건네고 싶은 나 혼자만의 위로를 건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