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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y 17. 2024

보물찾기 한 판 해볼까?

“연휴에 집에 좀 있으면 안 돼? 난 좀 쉬고 싶어.”

연휴만 되면 집에 있기 싫다는 둘째, 셋째와는 달리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큰 아들.

“대체 왜 빨간 날만 되면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참 나 원, 너 어렸을 때는 더 많이 나갔거든. 너 어렸을 때는 무슨 무슨 축제, 행사 다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체험하고 경험하게 하고 했거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만 아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날카로운 파편들을 고대로 주워다 입술에 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순천 국가정원에 가는 거였는데 저놈의 큰놈이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절대 못 가겠다, 아니 안 가겠다 시위한다. 작년에 그런 아들을 존중해 준다는 명목하에 혼자 집에 내버려 두고(?) 협조 잘하는 두 아이만 데리고 다니기도 했는데 혼자 집에서 뭘 하는 건지 여자친구랑 통화는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해대면서 가족들의 전화는 받지도 않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되자 다시는 혼자 집에 두고 나가지 않겠다며 선언한 남편. 본인이 한 짓이 있으니 아빠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게 되자 이젠 어디만 나가려고 하면 집에 좀 있자며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넌 왜 그렇게 집에만 있고 싶은 건데? 이유를 좀 말해봐.”

“학교 다녀오면 공부하느라 하루가 다 가고,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누가 보면 하루 온종일 공부만 하는 줄 알겠네 참 나) 나도 쉬는 날에는 좀 마음 편히 쉬고 싶다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내 소원이야”

한 번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놀다 들어오고, 뻔질나게 나가기를 반복하던 아이가 불과 몇 개월 사이 이렇게 빈둥이가 될 줄이야.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달랑 학습 패드 하나로 공부하는 게 다 인데도 늘어난 학습량과 학습난이도가 버거운가 보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에 이번에도 큰아들에게 지고 말았다.     



“기쁨아. 순천에 가면 그늘 하나 없어서 돌아다니는 거 엄청 힘들 거야. 땡볕에 계속 돌아다니면 너무 덥고 힘들지 않을까? 우리 근처 왕인박사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너 배드민턴 연습도 하고 도시락 싸서 돗자리 펴놓고 놀다 오는 건 어때??”     

온갖 달콤한 말로 딸내미를 꼬셔 집에서 20분 거리의 공원으로 가기로 결정. 큰아들도 멀리만 가지 않으면 괜찮다며 선심 쓰듯 같이 가주겠노라 말하는 그 얼굴을 보는 내 속만 시끄럽다.



누구보다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했고, 엄마와 단 둘이 데이트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해하던 아들이었는데. 변해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지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맑음이가 재미없다고 할까 봐 난 누가 시키지도 않는 눈치를 자꾸 보게 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말이 맑음이의 입에서 나올까 봐 내내 노심초사하는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만 새어 나온다.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건지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마음이 들었던 건지 잔뜩 구겨져 펴지지 않는 포일 같았던 아들의 얼굴이 어느새 안정되고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멀리 나들이를 가고 싶어 했던 기쁨이와 행복이도 일단 나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불평 가득한 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 보며 누구도 듣지 못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넓은 장소에서 마음껏 자전거도 타고 배드민턴도 치고, 작은 미로공원에서 술래잡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곧 한계에 다다른다. 아이들의 흥미도 나의 체력도.

나는 좀 쉴 수 있으면서 아이들은 열심히 놀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참을 머리를 굴리다 번뜩 생각이 스친다.

“얘들아, 우리 보물찾기 할까?”

슬슬 지루함을 느끼던 아이들의 눈빛이 번뜩하며 살아난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아이들이 먹고 남은 빼빼로 과자 상자를 대충 찢어 보물쪽지를 만든다. 보물 내용을 뭐로 할지 아이들과 함께 정하는데 눈이 너무 빛나 밤하늘에 걸어두고 싶을 지경이다. 이렇게 초롱초롱 한 눈빛을 본 적이 있던가. 공부를 이런 자세로 하면 소원이 없겠고만. 아이들과 함께 정한 보물의 내용은 마트이용권, 하루 책 안 읽기, 핸드폰 사용 시간 추가, 용돈 등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것으로 결정,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보물종이를 고이 접어 열심히 숨긴다.


이제 찾기 시작이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탱탱볼처럼 튕겨져 나가는 아이들. 세 아이 중 제일 진심으로 보물 찾기에 임하는 큰아들의 모습을 보며 괜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이렇게 보면 너도 아직 애구나. 다 큰 것같이 말하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해도 그거 하나 더 찾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예전의 아들을 다시 만난 것 같아 행복하다.

구석구석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아이들


노련미가 있는 맑음이가 제일 많은 보물을 찾아오자 기쁨이와 행복이 입이 댓 발 나오고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용돈도 마트이용권도 다 필요 없다, 오직 게임시간 늘리기만 있으면 만족한다는 맑음이는 나머지 보물을 동생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준다. 아직까진 핸드폰 사용시간 연장보다는 마트에서 본인이 사고 싶은 간식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한 동생들은 맑음이가 나누어준 보물을 받아 들고는 입이 귀까지 걸린 채 그렇게 모두가 만족한 보물 찾기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맑음이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본다. “맑음아, 다음번에도 이렇게 나들이 나오면 같이 나올 의향 있어?”

“음, 뭐 가까운 데로 가면 한 번 생각해 볼게.” 쿨내 진동하며 말하는 아들.

‘절대 안 가.’였던 아이가 ‘한 번 생각해 볼게.’로 바뀐 것만으로 이번 나들이는 성공적이었다고 봐도 되는 걸까.      


“엄마 다음번 연휴 때는 어디로 놀러 갈 거야?”

엄마의 속도 모르고 설렘과 기대감 잔뜩 실린 기쁨이의 목소리. 하, 다음번은 어디로 나가야 하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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