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한 학기 동안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지켜보았던 금쪽이. 교실을 뛰어다닐 때 같이 뛰면서 잡으러 다녔고 복도 레이싱을 할 때면 ‘네가 이렇게 운동이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구나, 아주 고맙다.’를 외치며 함께 달렸던 아이. 교실에서 뒹굴고 드러누울 땐 세 아이 키워내며 얻은 건 튼실한 팔뚝 하나인데, 그 팔뚝이 아직 힘을 쓸 일이 더 남았구나를 깨닫게 해 주었던 아이.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아이를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2학기 개학을 하루 앞둔 날, 교장선생님께 걸려 온 전화 한 통.
금쪽이 반으로 전학생이 한 명 오게 되었는데 특수학습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기를 반복, 결국 강제 전학을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 14시간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는 나는 3교시가 끝나면 더 이상 수업 지원을 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전일제로 근무가능한 공존교실 강사님이 금쪽이 반으로 배치, 나는 협력강사가 필요한 다른 학년에 배치되어야 할 것 같다고.
그 전화를 받는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와, 담임선생님 어떡하냐.’였고 두 번째는 한 학기 동안 정든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3월 학기 초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해서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듣게 했었고, 어느 정도 착석이 가능해지고 나서는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앉아 있도록 했고, 나중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글씨를 써보고 수업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활동은 함께 해 보도록 하며 조금씩 학교에 적응해 가도록 어르고 달래도 보고 엄하게도 해보고. 이제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오늘 컨디션이 좀 괜찮구나, 오늘은 좀 힘들겠네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렇게 내 마음을 쏟아부었던 아이와 이별이라니. 마치 열심히 키워낸 내 자식을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1학기 동안 우리 반에서 도움을 주시던 선생님이 이제는 다른 반으로 가시게 되었어요. 감사했다고 인사하자.”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 모두 아쉬운 표정과 마음을 드러내었고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금쪽아, 새로 오신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이제 밖으로 막 뛰쳐나가지 말고.”
나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금쪽이. 그렇게 금쪽이와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도움반 선생님을 만나 미처 하지 못한 인사를 나누는데,
“선생님, 선생님하고 인사도 못 나누고 헤어지는 줄 알고 아쉬웠어요. 젊고 예쁜 선생님이 오셔서 그런지 금쪽이가 아주 쿨하게 가버리던걸요(웃음).”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학교로 가신 줄 알았어요.(웃음) 애들한테 너무 정 주지 마요. 애들 다 그래. 몇십 년을 가르쳤는데 애들은 다 그러더라”
씁쓸했다. 담임선생님 말고도 너무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아이들. 그렇기에 만남과 헤어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고, 아직 어리기에 헤어짐에 무덤덤할 수도 있는 건데 난 왜 이렇게 씁쓸하고 아쉬운 걸까.
새로 지원을 들어가는 반도 1학년이기에 금쪽이반을 가끔 지나치는데 도저히 금쪽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나랑은 그렇게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돌아다니고 뛰어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도움반으로 내려가는 금쪽이의 쌍둥이 형만 볼 수 있었는데 너무도 똑같이 생겨서인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금쪽이 생각이 더 난다. 중간놀이 시간마다 활짝 열려있는 금쪽이 반 뒷문을 바라보며 오늘은 얼굴 좀 볼 수 있으려나 싶어 기대하는 마음을 살짝 가져보다가 끝내 마주치지 못할 때의 그 아쉬움이란.
아이들과 만나고 이별하는 것을 한 두 번 해 본 게 아닌데 왜 이 아이에게는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걸까. 자폐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기대와 희망으로 일반학급에 보낸다고 한다. 저학년 때는 그럭저럭 통합교육이 가능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점점 아이를 컨트롤하기 힘들어지고 그러다 나중엔 대부분 특수학교로 가게 된다고 한다. 이 아이만큼은 엄마의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금쪽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봤던 것 같다. 쌍둥이 아이 둘 다 자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엄마의 심정을 내가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아이를 봤을 때, 일반학교에서 졸업했으면 하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쏟았던 것 같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급식실로 내려가는 길을 인솔하는데 그때 딱 마주친 금쪽이네 반 아이들.
그렇게 오매불망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하고 달려오며 반갑게 인사해 주고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내 눈은 금쪽이만 찾고 있다. 저 멀리서 신나게 달려오는 금쪽이. 공존교실 선생님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오는 금쪽이를 보는데 참 나 원. 너 나랑 있을 때는 그렇게 해맑게 웃어준 적이 없었으면서, 맨날 울고 징징대고 하더니만 젊고 예쁜 선생님이랑 함께 하니 그렇게 신나니! 애들 눈은 정확하다더니만 너도 어쩔 수 없구나. 그래, 잘 지내고 있으면 됐다. 남은 1학년, 담임선생님 힘들게 하지 말고, 도움반 선생님 말 잘 듣고, 옆에서 지켜주시는 선생님 힘들게 하지 말고.
나도 이젠 쿨하게 너를 보내줘야겠다. 새로 만난 아이들, 한 자릿수 덧셈 뺄셈도 못 해서 교실에서 맨날 자신감 없이 쭈그리처럼 있는 그 아이들에게, 내 남은 마음을 온전히 내주어야겠다. 안녕 금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