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잘못했네.

엄마표 김치맛, 기억할 수 있을까?

by beloved

“나는 학교 앞에서 이 집이 제일 맛있어!”

“여기가?!”


언빌리버블….

친구야…이 MSG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짜장밥이 맛있다고??!


처음엔 몰랐다.

대학에 가서 대부분은 다 맛있다고 하는 집들이 내게는 맛이 없었다.


어떻게 이걸 맛있다고 할 수가 있지?

이건 너무 짜고, 저건 너무 간이 안 배었고, 요건 그냥 미원을 때려 부은 맛인데?


혼자서 식당에만 가면 으읭?! 에잉?!

자꾸만 이러다 보니 까탈 대마왕처럼 보일까 봐서 어느 순간부터 표현을 하지 않고 속으로만 되뇌었다.


‘맛이 없는 음식을 파는 것은 범죄행위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없으면서 돈을 받잖아…’


그런데 사실, 이건 식당의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엄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보자면….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모든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는 파는 과자를 그리 즐겨먹진 않는 것 같다.)


엄마가 도나스가루 봉지를 들고 집에 오시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반죽을 하시는 동안 엄마가 나에게 조수 역할을 맡기신다.


“가서 물 잔이랑 소주잔 가져와~”


척하면 척! 나는 쪼르르 부엌에 달려가 동그란 물 잔과 아빠 소주잔을 가져온다.


엄마는 반죽을 크고 둥글게 밀대로 민 다음, 큰 물컵으로 동그라미를 찍어 주셨다. 그러면 나는 소주잔을 들고 정중앙을 맞춰 소주잔으로 가운데를 찍었다. 그러면 도나스 모양 완성!!


찍어낸 큰 도나스와 가운데 남겨진 작은 동그라미도 버리지 않고 함께 튀겨서 설탕과 계핏가루를 뿌려서 주시곤 했다.


내가 참여했다는 뿌듯함과 반죽이 빵이 되는 신기함, 그리고 큰 컵이 엄마 같고 소주잔이 나 같아서 우리도, 컵들도 온 가족이 모인 것만 같은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름이 되면, 쫄면, 냉면은 기본이고…

검은콩을 불려서 껍질을 벗기고, 연두색 속살을 가지고 갈아낸 서리태 콩국수도 정말 꿀맛이었다.

다른집 콩국수 색은 하얀색인데, 엄마가 만든 연두색 콩국수 색이 신기하고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어른이 되고 생각해보니, 그냥 콩물을 사서 먹으면 편했을 것을.. 내 자식이 먹을 거라서 그러셨을까?)


나누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던 우리 엄마. 명절이 되면 선물을 살 형편은 되질 않으니 대신 약밥을 큰 솥 가득 쪄내시곤 했다.


윤기가 자르르한 찹쌀이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한 대접 가득 까 놓은 생밤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으며 구경하는 약밥 만들기는 참 재미있었다.

쪄내고 식혀서, 뚜걱뚜걱 네모나게 자르신 다음, 엄마는 우리에게 임무를 맡기셨다.


“이거는 누구누구 집사님 댁 드리고, 이거는 네 친구 누구누구네, 이거는 누구 언니네 … 인사드리고 와라.”


명절 배달부가 되어 약밥을 나르면서 나는 늘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신나게 달려갔다.

‘이렇게 맛있는 걸 우리 엄마가 만드셨어요!’


그 무엇보다,

가장 맛있었던 건, 엄마가 만든 김치였다.


아랫동네 김치처럼 젓갈 맛이 너무 세지도 않고, 시원하고 아삭하면서 간이 잘 배어있는 엄마표 김치.


엄마표 김치는 배추김치도, 겉절이도, 동치미도 모두 정말 너무 맛있었다. 마법의 가루 미원 등을 전혀 쓰지 않으셨고 풀을 쑤고 새우젓을 김장철마다 사서 만드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김치가 막 맛이 배어서 아삭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나는 때와 푹 익은 묵은지를 씻어서 된장에 지져먹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김치를 먹을 때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김치 담그는 거 시집가기 전에 알려줘야 돼~”

“걱정하지 마, 엄마 머릿속에 레시피가 다 있어!”

“그래도 적어 놔요. 배워서 해봐야죠!”

“그래, 그래! 알았어~”




엄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뒤,

엄마가 없어도 배가 고프다는 것이 뭔가 죄스럽고 싫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엄마는 이제 영원한 삶을 사는 하늘나라에,

나는 아직도 고단한 현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선 긋기처럼 느껴졌달까.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던 몇 주간의 흔적을 치우기 위해 냉장고를 정리하는데, 엄마가 만들어주신 김치통이 보였다.


아끼고 아껴서 마지막 한 조각을 먹던 날, 간절히 바랬다.


이 맛은 꼭 기억해서 만들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의 미각이 조금만 더 날카롭고 예민했으면 기억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날 이후, 엄마 김치 맛과 다르다는 것만 기억할 수 있는 미각이 남았다.




천국에도 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착하자마자 엄마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엄마! 김치 레시피가 대체 뭐였어요? 알려주고 가기로 하고선 그렇게 갑자기 가시면 어떻게 해요! 이제 얼른 비법 좀 알려주세요~!”


잊어버린 나의 김치맛을 찾을 수 있는 기쁜 날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