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oved Nov 02. 2021

못 찾기 대회 1등입니다.

영예의 1위, 이제 반납할게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


못 찾기 대회 1등.


코앞에 두고도 못 찾기는 일상다반사이며,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내 눈에는 왜 이리도 안 보이는지.


물론 못 찾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물건 정리를 내 방식대로 한다. 이 말인즉슨 아무 데나 두고서 그 자리를 잘 기억할 것이라는 못된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것.


2. 잘 기억해야지 하고선 그게 어디 있는지, 혹은 무엇인지 기록해둔다. 그러나 잘 적어둬야지 했던 생각만 기억이 나고 그것을 어디 적어두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게 함정.


3.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찾아줄 사람이 아직 주위에 있다. 즉, 애써서 찾으려는 의지 또한 박약이다.


엄마는 내가 뭘 찾을 것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찾아보면서 “없는 것 같아~”라고 하는 말을 믿은 적이 별로 없으셨고, 결국 찾아내시곤 한마디 던지셨다.

 

“넌 진짜 못 찾기 대회 나가면 1등 하겠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못 찾기 대회 1등 쉬운 거 아닌가? 찾을 수 있어도 못 찾는 척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그렇게 날로 먹는 사람은 아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하되, 결정적인 순간에 찾지 못하는 것일 뿐. 


어쨌든.. 잘 찾는 엄마와 동생들 덕에 집에서는 별 문제가 없이 살았다.


문제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첫 직장에서 호랑이 사장님을 만났다.

어리바리 신입사원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건만…


안에서 새는 1등이 밖에서도 1등인 법.


소형 냉장고, 건조기, 이불, 항균 약품 등등… 사장님의 오더에 따라 종목이 너무나도 다양했다.

관련 지식이 1도 없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고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패턴의 ㅍ도 모르는 나에게 이불 원단 디자이너와의 미팅을 준비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SSFW라는 말도 이때 처음 알았고(나=패알못), 원단사 시즌별 카탈로그와 해외 잡지들을 보면서 제품 라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신생업체이다 보니 원단사 디자인 실장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 사장님이 꽂히셨고 나름 해외의 유행이 지브라 패턴, 즉 얼룩말 무늬였다. 여러 잡지에서 오려낸 패턴 중 하나를 골라주셨다.


긴장된 마음으로 딱풀을 꾹꾹 눌러 4 분할한 한쪽 칸에 엄지손가락만 한 패턴을 붙이고, 스크랩북을 들고 미팅으로 이동했다.


업체와의 미팅.

사장님이 말을 꺼냈다.


“저희가 스크랩한 패턴들 보면서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초짜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긴장된 마음으로 스크랩북을 열었다.


없다!!!

지브라 패턴이 사라졌다!!!!


사장님은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B씨! 지브라 패턴 어디 갔어요? 응?”

“ 아, 저, 그게요~!! 잠시만요!”


‘어디 갔니 얼룩말아!!! 나한테 왜 이러니?’ ㅠㅠㅠㅠ


허둥지둥, 아무리 넘겨봐도 없다.


사장님은 애써 화를 참으며 미팅을 이어나갔다.


지브라가 사라진 시점부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미팅을 마친 후, 사장님은 폭발하셨다.


“아니,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잘 챙기라고 했더니 내가 얼마나 민망@&#%~~~~~”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회사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어질 리가 없는데…

회사에 돌아온 나는 스크랩북을 다시 뒤져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지브라는 있어야 할 페이지 반대면에 붙어있었다.

딱풀이 밀려서인지(아직도 왜 거기 붙었는지는 미스터리..) 붙어야 할 분류표 사분면의 마주 보는 쪽에 붙어버린 것. 심지어 반대쪽 면은 스크랩 페이지의 뒷면이라 패턴 하나 붙지 않은 흰 페이지였다.


이걸 못 보다니…ㅠㅠㅠㅠ


지브라의 실종 앞에 눈앞이 하얘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당황해서 보이질 않았나 보다.


이때, 나는 못 찾기 대회 1등 타이틀을 이제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더불어 애꿎은 얼룩말도 싫어졌다.




그날을 반면교사 삼아서였는지, 나의 뇌에 충격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후 난 가끔 꽂히는 무언가를 꼭 찾아내는 센서가 생겼다. 물건은 여전히 못 찾고 있지만 특정 정보에 한해서.

약간 찾기 전까지 뇌가 간지럽다고 해야 할까? 그걸 찾아서 뇌를 긁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 단서가 될 만한 한 가지가 걸리면 발동되는 것 같기도…)


가끔 이 센서가 커지면 업무에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웬만한 빅데이터는 이제 손쉽게 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

문제는 어떤 키워드로 찾느냐인데..


최근, 회사의 굿즈를 제작하기 위해 업체를 찾고 있었다.

이미 여러 명이 찾아서 공유한 것들은 다 거기서 거기.

판촉용 제품이야 다 비슷할 테지만, 굿즈 포장 등 원하는 납품 퀄리티가 나올지가 미지수.


답이 안 나온 채로 떠난 늦은 여름휴가.


휴가길 차 안에서도 계속 폭풍 검색 중…


그러다가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비슷한 굿즈를 마라톤 참가 리워드로 주었던 데이터를 찾았다.


그러나, 그 굴지의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그거 어디서 만들었어요?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때, 나의 찾기 센서에 불이 들어왔다.

내가 오늘 너를 찾고 말겠다! 


일단 키워드 검색!

그 리워드명을 검색하면 다 겉모양 찍은 사진만 수두룩. 

메이저 포털을 뒤지며 포기해야 하나 하던 찰나!

한 사람이 당X마켓에 리워드로 받은 굿즈를 판매하는 글을 찾아냈다.


그래, 중고마켓은 상세 사진이 기본이지!

올려놓은 몇 개의 사진 중 굿즈 내부 상세 사진에 붙은 제조사 라벨을 발견! 다운로드하여 확대!!

흐릿해도 글씨는 보인다! 


제조사: OOOO코퍼레이션!!!


빙고!!!


이름 검색으로 찾은 업체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매년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에이전시다. 

퀄리티는 보장, 그렇다면 단가는?!! 

휴가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오~생각보다 가격도 괜찮네!


늦은 여름휴가를 떠난 마당에 놀 생각은 않고 그걸 찾아내고 나니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나 워커홀릭인 건가....)



못 찾기 대회 1등은 반납하고, 꽂히면 잘 찾는 대회 1등을 노려본다.

물론 순위 다툼은 없다. 그저 나 자신과의 싸움일 뿐.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뱁새, 의문의 1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