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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May 21. 2023

내가 주인공이면 파국이에요.

재밌는 일 없어?

 나는 재미있는 일이 없다. 내 삶은 단조롭고 일상은 평화로우며 변화는 없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내일 같다. 누구보다도 내일이 명확하고 당장 내일 내년 십 년 뒤의 삶도 그릴 수 있다. 안정적이다. 지겹다는 말이다. 오늘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이 내일의 삶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다. 그래봤자 나는 여기에서 똑같이 살아간다.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나이는 지났는데 언젠가부터는 불편한 자리에선 어떤 음식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은 잘 먹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나는 여전히 자극적인 삶을 기웃거린다.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기엔 나이만큼 꼰대인걸. 그렇다면 꼰대에겐 재밌는 일이 없는 걸까.


1. 연애: 이미 결혼해서 연애 못 함. 이제 연애하면 불륜이고 그건 지나치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 독으로 돌아오겠지.

2. 직장: 같은 일을 십 년째 하는데 매일 새롭긴 하지만 매일 지겹기도 하다. 너는 어제도 시끄러웠고 오늘도 시끄럽고 내일도 시끄럽겠지. 대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귀여우니까 봐주기로 한다.

3. 나: 나이 많은 나는 당연히 재미없다. 사회적 자아가 생겼으니 참(는 척 하) 거나 이해하는(척하는) 경우가 많아 이벤트 발생률이 낮고 가끔 이벤트가 발생하더라도 (기력이 달려) 호응도가 예전 같지 않다.

4. 건강: 여기 이벤트가 생기면 이제 큰일이다. 보험 가입을 더 해야 한다.

5. 결혼: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무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응?)


 서른 살까지 나는 꽤나 불안정한 사람이어서 하루하루의 삶에 변곡이 심했는데, 그 변곡에 추가로 이벤트들을 더해 아주 롤러코스터 같이 살던 시기가 있었다. 사랑 없이 못 살았다가 소리 지르며 싸우고 갑자기 생긴 사건에 바로 다음날 거주지를 옮긴다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난다거나, 마음에 방이 여러 개 생긴다거나 하는 일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빨간 버스를 타고 시끄러운 곳에서 밤을 보내고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삶.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클럽을 간다거나 폭우로 침수된 고시원의 물을 퍼낸다거나 하는 삶. 별이나 달을 따 달라고 하진 않지만 오늘의 내가 내일도 너를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던 그런 불안하고 위태로우나 아슬아슬하고 재밌는 삶.


 돌이켜 보면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이었을 뿐인데, 안타까운 시기였는데 왜 이렇게 향수가 돋는 건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아니 지금의 나는 너무 좋은데! 초록의 초여름 주말 시끄러운 동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걱정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 스스로가 너무 좋은데 이런 글을 쓰고 있네. 웃기게도.


 여하튼 그래서 요즘 나의 인사는 "재밌는 일 없어?"로 시작한다. 재밌는 이야기 컬렉터가 되었다. 너의 삶에서 나에겐 없는 자극을 맛보고 싶어 한다. 죽고 못 사는 사랑 이야기, 나는 모르는 세상 이야기 라든가 아니면 인간 본연의 못난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로 나의 그리움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데 역시나 턱없이 부족하다. 친구들의 삶에는 육아가 대부분이고 그리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 이야기도 육아 이야기다. 그러니 이야기 주머니는 도통 채워질 생각이 없다.


 재밌는 이야기 어디 없나요? 커피 한 잔에 들려주실 이야기 같은 것들. 재미있고 위태로운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가 필요해요. 제 이야기는 안 돼요. 주인공이 되는 순간 파국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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