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자살 사건 발생 후 학교 안정화를 위한 사후 대응 교육 안내
기다란 제목의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담당자는 아니지만 해당 공문은 전 교직원에게 공람되었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최근에 세상을 떠난 한 유명인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추모의 마음을 보내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도 여긴 초등이라 다행이야.'
저는 덕질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쉽게 질리는 제 성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좋아하던 연예인은 있었습니다. 매일 노래를 듣고 사진을 찾아보고 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땐 그들이 제게 신이었고 연인이었고 친구였습니다. 만약 그때 그 가수가 자살을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비록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 아이들이 유명인에 몰입하는 정도가 예전보다 더 커졌다고 느낍니다. 유명인과 대중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여러 플랫폼을 활용한 라이브 방송이나 '버블'처럼 좋아하는 유명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메신저 플랫폼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화면 속에서 지켜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소통하는 사람이며 직접적으로(물질적으로) 그의 삶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삶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가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실제로 그러한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선택한 끝이라고 합니다. 그는 최근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의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즉, 팬들은 그의 힘듦을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는 그가 힘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고의 과정이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실과 우울, 그리고 불안을 안겨줍니다. 오늘 도착한 공문은 그런 아이들을 안정화 시키기 위한 공문입니다.
힘들어하는 청소년을 둔 교사를 위한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두루 뭉실하게 서술된 조언이 아니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
학생들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회복을 재촉하지 않기
스트레스 반응에 대해 '네가 약해서 그래'하며 학생의 문제로 탓하지 않기
'이제는 괜찮겠지'라며 학생들의 지속 반응을 대수롭게 넘기지 않기
학교는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그리고 그것이 혹여 모방 죽음으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학교 밖의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학교 안에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의 커다랗고 반짝이던 팬심이 상실과 불안으로 순식간에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초등이라 다행입니다. 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은 연예인보다 당장 옆자리의 친구를 좋아하니까요. 아직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시기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 회복을 재촉하지 않기, 대수롭게 넘기지 않기 등의 공문 속 문구들을 보며 울고 있을 학생들을 떠올립니다. 삶을 마감한 유명인에게는 조의를 표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남아서 슬픔을 감당할 아이들이 애달픕니다. 순간 지나갈 바람이라면 좋을 텐데 생각보다는 오래 그리고 깊게 울겠지요, 그런 아이들을 예상하고 (혹은 이미 발견하고) 발송된 이 공문이 저는 참으로 따뜻합니다.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국가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데 하물며 교육기관에 불과한 학교는 오죽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로, 학교는 아이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를 오늘은 전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이길, 그리고 혼자 외로이 떠나는 사람이 없는 밤이길 바라봅니다.
봄바람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