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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11. 2024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

주섬주섬 쌈짓돈을

  어린시절부터 우리집의 식사예절은 외할아버지의 생활방식에서 유래된 게 많았다. 밥을 먹을 때는 조용히, 씹는 소리도 절대 내선 안되었다. 후루룩 거려서도 안되고 밥상에 팔을 대고 먹는 것도 안됐다. 밥먹다가 돌아다니는건 상상할 수 없었고 밥알 한알이라도 남겼다간 전세계 기아의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신교육을 받았다.


  명절 때 외가에 가면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볼 기회가 많았는데, 집 안에는 동네를 다니며 주워오신 고물들이 쌓여 있었다. 남이 버린 물건도 아깝다며 주워오셔선 집 안 구석구석을 꾸미시고 남은 것들을 모아두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는데, 집을 직접 고치시고 리모델링도 알아서 다 하셨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허리 한번 제대로 못펴고 평생 힘들게 일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셨다니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오랜시절 몸에 벤 절약습관이 많았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웬만한 거리는 항상 걸어다니셨고, 낮에는 절대 불을 켜지 않으셨으며 밤에도 텔레비전 화면에 의지해서 생활하셨다. 거의 불을 안켜신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대 있는 전화기에는 굵은 궁서체로 '용건만 간단히!'라고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다.


텔레비전 밝기면 밤에도 불을 켤 필요없지 -김OO 할아버지


  화장실은 옥상에 하나 있었는데, 물내리는 수도관이 없는 것 같았고 변기 옆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처리했다.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까지는 그렇게 생활하신 것이니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화장지를 아끼기 위해 매일 찢어버리는 지난 일력(달력처럼 빳빳한 종이가 아니라 옛날 전화번호부 종이 재질이었다)을 쌓아두고 용변처리에 사용하였다.


  명절 용돈도 할아버지가 아니고 늘 할머니께서 주셨다. 가끔 나는 혼자서 외가에 가곤 했는데, 어느날은 할아버지께서 혼자 계셨다. 나의 예상 못한 방문에 반가운 표정을 지으시고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고정하셨고 물을법한 안부도 묻지 않으셨다. 불은 여전히 켜지 않으셨다. 어색한 분위기는 잠깐 이웃집에 가셨던 할머니의 복귀로 완화되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할아버지께서 손주들 중 유일하게 혼자서도 찾아왔던 나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손수 책상도 만들어주셨다. 나는 그 책상에서 고교시절 동안 대입시험을 준비했으니 반은 할아버지 덕분에 대학을 간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더 흘러 대학생 때 또 혼자 외가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곧 캐나다로 공부하러 갈 예정이었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 간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신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꺼내시듯이 한 상자에서 돈을 꺼내 주셨다. 나보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더 놀라셨다.


"아이고, 별일이 다 있네. 이 영감이 돈을 다 꺼내주는 날이 있네~ 세상에.."


할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은 유일한 손자가 되었다. 난 이미 할아버지로부터 책상을 받은 유일한 손자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손주들은 모두 15명이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멋진 할아버지가 되겠다고. 나도 손주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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