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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13. 2024

뒷브레이크를 잡아

직접 체험한 관성의 법칙

  내리막을 빠르게 자전거로 슝슝 달리면 공기를 가를 때의 느낌이 참 시원하고 좋다. 가끔은 페달을 멈추고 핸들바에서 손을 뗀 채로 양팔을 벌리고 내리막을 내려가면 내가 새가 되어 날아가는 듯한 자유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첫 직장은 퇴근길에 기다란 내리막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때 종종 이런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 지금은 아주 능숙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자전거가 없어서 12살이 될 때까지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배울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나는 탈 줄 모른다며 배우지 않았다. 나는 동네 친구의 자전거를 함께 타곤 했는데, 그 자전거의 안장은 길어서 친구와 내가 충분히 함께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것은 5학년 때였다. 그 때도 내 자전거는 없었지만 내가 사는 곳 근처의 공원에서 가끔 자전거를 빌려주는 경우가 있었다. 자전거 상태는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기 저기 긁힌 자국들이 많았고, 누가 보더라도 허름해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지만 무슨 자신감이 생긴 건지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금방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발이 땅에 닿았기 때문에 더욱 수월했던 것 같은데, 초반에 잠시 헤매다가 계속 시도하다보니 좀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결은 핸들을 꼭 붙들고, 발로 페달 구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쓰러질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상태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일단 하루만에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게 되니 과거에 왜 그리 자전거 타기를 두려워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생이 되자 드디어 내 자전거가 생겼다. 늘 걸어다니기만 했던 삶이 자전거를 타자 반경이 넓어졌다.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지기 전이었지만 나는 꽤 멀리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었다. 종종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한두시간은 꼬박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잠깐 쉬었다 다시 출발하는 식으로 해서 하루 종일 자전거 여행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속도에 대한 두려움은 갖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내리막 중간에 있었는데, 종종 그 내리막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겁없는 학생들은 그 내리막을 감속없이 한번에 내려오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위쪽에 있는 문구점에 가기 위해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마침 앞에서는 자전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그 자전거를 피하기 위해 오른쪽 담장 쪽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이 자전거도 나를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이동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피한 바람에 서로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살짝 긁혔을 뿐 멀쩡했고, 자전거로 내려오던 학생도 나와 부딪히면서 속도가 줄어서인지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았다. 상황은 금방 종료됐고, 그 학생은 사과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나는 몸은 멀쩡했지만 두려움은 조금 더 커졌다.


  나는 자전거로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아주 천천히 내려가곤 했다. 브레이크를 살살 잡으며 내려갔기 때문에 답답하긴 했지만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자전거 브레이크를 보면 휠의 바깥쪽 부분을 고무패드가 닿아 생기는 마찰력에 의해 바퀴의 속도가 줄어들게 됨을 알 수 있다. 느린 속도로 내리막을 내려오면 다시 붙잡고 있던 브레이크를 풀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전거를 타왔는데, 어떤 날은 다른 생각을 했는지 익숙한 길을 자전거로 가면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내리막에서 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오른쪽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그 순간 내 몸이 공중에 붕 하고 뜨는 기분을 느꼈다. 내리막 중간에서 자전거는 속도를 못이기고 뒷바퀴가 위로 들렸고, 전복된 자전거 옆에 내 몸도 내동댕이쳐졌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나는 급히 전복된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갔다. 팔꿈치와 무릎에 긁힌 상처가 여러 군데 생겼지만 반사적으로 낙법을 잘쳤는지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 순간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브레이크는 항상 양쪽을 다 잡아야 한다고. 나는 그 가르침을 잊고 항상 오른쪽 앞브레이크만 잡았었는데, 그동안 전복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속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느린 속도로 내리막을 내려왔던 덕분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의 제어가능한 속도가 좋아졌다. 핸들을 놓진 않더라도 내리막에서는 자연스런 가속과 함께 상체를 일으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온몸으로 공기를 가르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림은 MS 인공지능 Copilot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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