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 앞 사거리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놀다 보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올 때가 있다. 비가 오면 우리들은 하던 놀이들을 멈추고 비를 피해 어딘가로 피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대로 집으로 가는 것은 너무 아쉬워서 동네 슈퍼마켓 처마 밑에 모이곤 했다. 동네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슈퍼에 민폐를 끼치면서도 재잘재잘 떠들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도 재밌었다. 나는 놀이를 계속하지 못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비를 구경하면서 함께이야기하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살짝 젖은 옷들보다 더욱 촉촉하게 변해가는 땅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맑은 날 함께 부대끼며 뛰어노는 것이 큰 기쁨이듯이, 비오는 날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비오는 날엔 역시 커피 (사진: Unsplash의 Sixteen Miles Out)
과거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비오는 날의 처마 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비는 메마른 땅에 마치 은총을 내려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가끔 마음씨 좋은 슈퍼마켓 사장님이 자판기 코코아를 뽑아주시곤 했는데, 그날은 행복이 넘쳐 흐르는 날이 되었다. 요즘도 비오는 날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단골 카페에 앉아 비구경을 하고 있으면, 어릴 적 그 처마 밑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냥 자연이 주는 위로와 축복을 맞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비가 오는 날이면 그렇게 더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사진: Unsplash의Christian Hebell
이번 달 5월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는 것만 같다. 이제 곧 오게 될 여름의 장마보다 여름을 앞에 둔 이 시기에 간간히 내리는 비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밤에 운전을 할 때 내리는 비만 아니라면 괜찮다. 밤에 도로에 뿌려지는 비는 도로 위에서 가로등 불빛을 반사시켜 차선이 보이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오는 밤 운전할 때의 비는 반갑지가 않다. 하지만 그 외에 내리는 비는 언제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