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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May 29. 2024

살아있는 것 자체로 귀하다

처음 친구의 부고를 들었던 날

"야야, 너 재신이 이야기 들었어?"

"어?아니, 재신이가 왜?"

"재신이가 방학 때 계곡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대... 그래서 이제 학교에 못 나와. 죽었대."

......


여기까지 듣고 난 후, 나는 충격에 빠져 말을 잊지 못했다.


"거짓말 치지마!! 재신이가..."


나는 같은 반 친구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재신이는 중1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였다. 출석번호로 재신이는 32번, 나는 34번이라 우리는 앞뒤 대각선으로 앉아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수업을 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던 재신이는 '필승'이라는 노래를 자주 부르곤 했다. 그리고는 다음 해에는 서로 반이 달라졌는데, 종종 학교에서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더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한다. 그것도 나는 재신이 장례가 치러진 지 한달도 넘어서 개학을 하고서야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같이 학교를 다니던 누군가가 그렇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중2때 처음 들은 친구의 부고는 아직은 어린 나이이지만 내가 늘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친했던 친구와 오랜기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면서 그 친구가 당연히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쉽게 믿는다. 누구나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직접 그 소식을 듣기까지는 그가 이미 떠나고 세상에 없더라도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재신이가 떠나고 난 이후부터 내가 재신이의 소식을 듣기까지의 그 시간동안 재신이는 이 세상에 없었지만 나의 세상에서 재신이는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의 부고를 듣고나서야 실제로 우리가 마주보고 대화하며, 서로 장난도 치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우리는 진짜 소중한 것을 소중한 줄 모르고 산다.






  얼마 전 한 여고생이 다리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려던 남성을 막은 뉴스를 보았다[1]. 이 학생은 경찰에 신고한 후, 경찰이 올 때까지 남성의 다리를 붙들고 버텼다고 한다.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가 살았다는 그 뉴스를 보며 눈물이 났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그가 살 수 있게 도와준 그 학생에게 고마웠다.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공감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같은 운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죽음을 피할 수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주변을 돌아보며, 내가 잘 살고 있음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9411





Photo by Euge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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