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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Jun 10. 2024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19일

너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행복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잘 걷던 아이가 갑자기 걷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을 보았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을 느꼈어. 걸음마를 이미 뗀 줄 알았는데, 왜 걷지 못하는 걸까. 전부터 잔기침을 많이 해서 자주 갔던 소아과에서는 얼른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더라고.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미선은 갑자기 걷지 못하고 쇳소리가 나는 기침을 하는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서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큰 아들도 아직 어려서 엄마의 품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큰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할 틈도 없이 둘째를 데리고 강북에 있는 큰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이에게 폐렴 증상이 있으니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는데, 왜 갑자기 걷지를 못하고 주저 앉는건지 설명해주진 못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가능성으로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어떤 질병을 언급하면서 아마도 그 병일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일을 마치고 저녁 때 늘 병원으로 퇴근을 했다. 남편이 교대를 해주겠다며, 잠깐이라도 집에 가서 쉬었다 오라고 했지만 미선은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아이가 걱정되어 집에 갈 수가 없어서 병원에 있었는데, 아이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의사는 아이에게 약물치료를 하기 위해서 머리에 있는 혈관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머리를 깎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했던 조그만 아이의 머리에 혈관주사를 놓기 위해 머리를 밀었으니 아이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머리에 주사 바늘을 찌를 때마다 자지러지는 아이의 비명을 듣는 일은 끔찍했다. 미선은 아이의 고통을 옆에서 오롯이 함께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머리에 꽂힌 주사 바늘이 불편한지 자꾸 몸을 움직이며 바늘을 빼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럴 때마다 미선은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아이를 꽉 붙들고 있어야 했다.


  가끔 친척들과 가족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미선은 그들을 반길 힘이 없었다. 수시로 움직이는 아이를 붙잡아야 했고, 아이가 잠들어 있는 중에도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켜보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일을 해야 했기에 저녁 때만 잠깐 교대해 줄 수 밖에 없었고, 미선은 그마저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남동생이 언제나 병실에 함께 있으며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주는 일을 해주었다. 눈치없는 시댁의 시누이 중 하나는 마치 안 들린다고 생각했는지 혀를 끌끌 차며 아이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선은 그런 소리를 듣고도 화를 낼 기운조차 나지 않았지만, 그 말들은 가슴 깊이 한으로 남게 되었다.


  미선이 잠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본 날이 19일이 되었을 때, 아이는 머리에 꽂힌 주사 바늘을 뗄 수 있었다. 정확한 병명을 듣진 못했지만, 희망없어 보이던 아이가 회복이 된 것이다. 먹을 것도 잘 챙겨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날을 보낸 미선은 뼈만 앙상히 남은 얼굴이 된 반면, 상태가 극적으로 회복이 된 아이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의사는 며칠 후면 퇴원이 가능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본능을 거슬러 초인적인 모성애를 보여준 미선도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었다. 미선의 둘째 아들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그녀의 상황을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아이의 회복을 바라고 기도했던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퇴원날이 되었을 때, 미선은 대략 한달 정도 보지 못했던 큰 아들에게 갈 수 있었다. 친정에 가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랜만에 아들의 얼굴을 보았는데, 큰 아들이 엄마에게 오지 않는 것이었다.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길어서였는지 아들은 엄마의 손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미선은 반가움과 함께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미안함을 더 크게 느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네 가족은 다시 함께 할 수 있었다. 둘째 아들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다시 행복한 웃음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웃음은 지난 한달 동안의 고통을 씻어주는 치료제처럼 느껴졌다. 미선은 생각했다. 


'그래 내가 다시 이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버텼던 거였구나'





사진: UnsplashPhil Good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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