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오늘 장수사진 찍었다.”
“네? 무슨 사진이요?”
“요즘은 영정사진이라고 안 하고 장수사진이라고 하더라.”
엄마가 다니시는 복지관에서 20명을 추첨으로 선발해서 장수사진을 찍는 행사를 했는데 너도나도 다 신청하길래 엄마도 했고 당첨이 되어 오늘 사진을 찍고 왔다고 하셨다. 사진은 인화해서 액자까지 담아 보내준다고 한다. 하루라도 젊을 때 찍어야지, 일 닥치고 찍으면 이상한 사진 쓸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네, 네’ 하는 내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걸린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대중적이고 공공연한 사실이자 진리이지만 그것이 나의 주변에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대중적이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사건이 되며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이 되어 버린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적 사고방식을 동원해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한다. 그중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
저자는 이 말은 진실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핵심적인 것을 말해주지도 않으며 흥미롭지도 않다고 말한다.
우선 ‘홀로’라는 것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라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고 할 때‘ ‘죽음’ 말고도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기 때문에 죽음의 독특한 본질에 대한 어떤 심오한 통찰도 던져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신장에서 결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못한다. 점심 식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내 점심을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아마도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나’라는 단어를 충분히 강조하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런 것들은 언제나 ‘나’의 고유한 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무도 나를 대신해 나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이 완벽한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죽음의 독특한 본질에 대한 어떤 심오한 통찰도 던져주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그리고 ‘홀로’라는 말에 ‘고독’이라는 심리적인 의미부여를 한다고 하면 그 고독감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급사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고독’이라는 현상이 있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과연 고독감을 느낄까?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반박하는 ‘철학적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되거나 입력되지 않은 수많은 내용들이 머리에 두리뭉실한 뭉텅이가 되어 어설프게 놓여갔지만 분명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엄마가 ‘장수사진’을 찍은 것이 슬픈 일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좀 더 다듬어지고 개선되어야 할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저자인 ‘셸리 케이건’도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직언한다.
“혹여 지금까지 내가 미처 다루지 못한 또 다른 해석방식도 있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건 여기까지다. 나는 여러분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는 진실일까? 이 주장으로부터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해석방식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의미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