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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Aug 26. 2024

올리버 색스

신경증 환자들의 임상 보고서인데 소설처럼 읽히고 철학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이다.     


뇌의 손상으로 시각적인 구체성을 잃어버리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남자, 알코올로 인해 일어난 유두체 변성으로 기억력이 고작 1분에 머물러 있는 사람, 급성 다발신경염으로 고유감각을 잃어버려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해 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 사람 등. 신경증 환자들의 증상이 생소한 신경학 용어들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 낯선 용어들은 러시아 소설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로 세르게이비치, 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 같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거부감 정도이다.    

 

신경학적으로 기능의 과잉에서 오는 질환(상상력 과잉, 중동 과잉, 조증 등)을 가진 ‘틱 환자 레이’는 ‘틱’으로 인해 만들어진 자신의 정체성-거칠고 돌발적인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 드러머-과 증상의 치료 사이에 고민한다. 신경매독으로 활기를 찾은 70세의 노인이 병 덕분에 행복감을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병리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기묘한 세상과 만나게 된다.     


자폐증, 정신병, 중증의 지적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쌍둥이 형제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생애의 어느 날이든 그날의 날씨나 그날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나 미래의 어느 날이 무슨 요일인지 물어보면 그 자리에서 대답해 준다. 이 쌍둥이의 능력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작가는 아무리 누군가가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이를 ‘병적’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병’의 현상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명명’할 권리가 없다.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읽어보면 그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어떤 대상에게 온전히 응답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임을 알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어떤 대상에게 내 안에 존재하는 실제의 힘으로 응답한다면 그 대상은 대상이기를 멈추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완벽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보고 응답하고 인식하고 인식 대상을 알아보는 감각을 갖추려면 감탄의 능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환자의 ‘병’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연구를 위한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들의 깊숙한 내면 속을 들여다보길 원했으며 그 가운데 발견되는 것들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감탄하였다. 그는 과거나 미래에서 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의 지금을 향한 집중력과 감탄하는 능력이 창조적인 치료와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 감탄하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병력은 개인에 대해 그리고 그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병력은 질병에 걸렸지만 그것을 이기려고 싸우는 당사자 그리고 그가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병력’ 속에서는 주체가 없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올리브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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