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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큰 송아지 Aug 06. 2021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빛

내가 빛날 때 모습으로 영원으로 향하길 바란다

나의 제주 여행은 5월의 수국을 만나러 갔었고, 다음 해 6월에는 우도와 본태박물관이 목적이었다.

5월의 제주는 바람도 많았지만 색감이 다채로웠다. 수국의 청색, 보라색, 붉은색과 화살나무의 빨간색, 바다의 푸른빛이 영롱했었다.

다음 해의 제주는 비가 많은 6월이었다. 비가 많아지다 보니 가보고 싶은 장소는 폐문인 곳이 많아 의외의 곳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음.. 사탕 박물관 같은 곳...

그렇지만 비 온 뒤 우도의 검은 모래 해변을 만난 것은 거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비 오는 날 탔던 잠수함도 기억에 남았다.

6월의 제주에서는 여행의 관문인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용머리해안을 들렸었다. 나는 이미 용머리해안을 서너 번 봤었던 차라 그다지이었으나 나의 동반자는 용머리해안이 처음이라며 설렌다고 했다.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며 마지못해 20분 만이라며 따라 내려갔다. 여행 시작부터 퉁퉁거리면 기분 망칠까 봐 대충 하자 대충 하자 하면서 발자국 소리에 맞춰 중얼중얼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내려갔더니 뒤늦게 터덜터덜 따라가던 내 발걸음이 내 앞의 동반자를 따라잡아버렸나 보다. 그거도 모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돌계단을 세며 내려가는 나를 동반자가 불러 세웠다.

동반자 목소리에 가던 발을 멈추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에서 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어? 왜 거기 있는 거야?'라는 듯이.

나는 내 동반자에게 여우다. 하기 싫은 거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내 동반자는 내 미소에 소리 없이 웃으면서 핸드폰을 올린다. 사진을 찍어주려나보다.

동반자가 그래도 사진 찍는 솜씨가 제법 그럴듯하다. 풍경사진은 내가 더 멋들어지지만 인물사진은 나보다 10배는 더 멋나게 찍을 줄 안다.

그렇게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용머리해안을 한 바퀴 돌자 내 기분도 나아졌고, 달달한 라떼를 한잔 손에 들었더니 텐션이 살아났다. 재잘재잘 대면서 동반자 팔짱을 낀다. 바람이 부는 것도 달콤하고, 비가 오는 것도 스위트 하고, 내 동반자도 허니 같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그날 찍은 사진을 점검한다. 그런데 여러 사진 중 눈에 띄는 한 장의 사진. 그게 용머리 해안 입구에서 앞서 가던 나를 불러 내가 뒤돌아 볼 때 찍은 사진이다.

검은 돌이 배경인데 내가 밝은 카키색의 옷을 입어서 그런 것인지 매우 상큼해 보인다. 마음이 살짝 설렌다.

느닷 이 사진을 내 영정사진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즐거운 여행에 사랑스러운 동반자가 있는 행복한 여행에 왜 영정사진이 떠올랐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그냥 그 사진을 보니.. 배경도 아름답고 나도 빛나고 있는 이 사진이 내 마지막을 장식해 주기를 바랐다.

동반자에게 '나 이 사진... 영정사진 할래. 내가 봐도 내가 지금 빛나 보여...'라는 말에 동반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해'하며 동조해주었다.


딸레미가 집에서 내 핸드폰을 들고 '사진 좀 봐도 돼?' 하길래 '응. 봐.. 볼거나 있겠니?' 하니 딸갱이가 내 핸드폰 갤러리를 보면서 소파에 두 발을 올리고 흥미진진한 듯 웃다가 찡그리다 한다. 커피를 두 잔 타서 한잔을 손에 들려주었다. 

'땡큐~ 엄마 사진첩 볼만한데? 꽃 사진도 별로 없고 풍경사진도 그다지 많지 않고... 엄마 사진이 많구먼. 내 친구 엄마들은 꽃 사진, 풍경사진이 많대'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꽃이나 풍경은 내 셀카 뒷배경으로 대신했었다. 꽃이 예쁘면 꽃 옆에서, 배경이 멋있으면 내 뒷배경으로.... 나 중심적인 사람인가....


그러다가 내가 허름한 닭발집에서 브이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엄마, 이건 누가 찍어준 거야?'

'응. 엄마 친구... 화가 겸 편집하는 친구인데... 전시회 때 와줘서 고맙다고 술 한잔 할 때 찍어준 거 같은데?'

'엄마, 이 친구분.. 남자야?'

'응.. 남자지.'

'엄마, 이 분은 엄마가 되게 귀여운가 봐'

'그게 보여?'

'응.. 엄마가 이 사진에서는 다른 사진보다 훨씬 앳되고 귀엽고 상냥해 보여... 사진은 찍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온대... 나도 가끔 느끼는데... 여하튼 이 분은 엄마가 되게 귀여운가 봐'하더니 까르르 웃는다. 딸갱이 웃음소리에 나도 미소 짓는다.


그날 밤.. 동반자와 소주 한잔을 하면서 그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귀여워 보인다. 

브이를 한 거도 그렇고 크로스로 맨 가방도 그렇고...

그러다가 제주도 용머리 해안에서 찍은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을 찍어준 내 동반자의 눈에는 내가 항상 반짝 빛나 보이고 상큼해 보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보.. 내가 당신 눈에 항상 사랑스러워 보여?'라고 생뚱맞게 물어보았다.

소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더니 나를 한참 바라본다.

'노코멘트'

피... 노코멘트는 무슨... 사진이 다 말해주는데..


그렇다고 모든 사진이 다 반짝이고 사랑스럽게 나오는건 아닌가보다. 

그래... 안 예쁠때도 있겠지... 안 사랑스러울 때도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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