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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큰 송아지 Aug 11. 2021

남의 취미를 즐기게 되었다

미끼는 던져졌고, 나는 미끼를 물었다

햇빛이 점점 강해지고 매미 울음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동반자와 나는 각자의 장비를 정비한다.

나는 다슬기통을, 동반자는 낚시도구를.


동반자는 어느 해부터인가 낚시에 맛을 들여서 베스, 쏘가리, 꺽지, 눈치, 준치 등 민물고기 만나러 감을 만끽하고 자꾸 나를 데려가려 했다. 따라가서 근처 평평한 곳에 돗자리 펴고, 이어폰 끼고 앉아 음악을 듣거나 누워 책을 보거나 했다. 루어낚시하는 곳은 깊어서 내가 놀 거리도 별로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했더니 내가 너무 무료해 보였나 보다.


어느 날 '이거 가지고 낚시하는데 따라오면 엄청 신날걸~'하면서 빨간 틀을 내게 내민다. 또 뭘 사 갖고 왔나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보니 '다슬기통'이다. ㅋㅋㅋ

아.. 자기 낚시하는 동안 심심하게 혼자 있지 말고 다슬기라도 찾아 잡아보라는 말이렷다. 

내 동반자가 앞으로 자기가 듣게 될 말들을 눈치챘나 보다. 

'난 심심해서 이제 따라가지 않을 거야'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안 가면 안 돼?'

'모기가 자꾸 물어.. 안 갈 거야'

이런 말로 자기를 따라나서지 않을 내게 자기가 물고기들에게 매번 새로운 루어로 유혹을 하듯 미끼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그 유혹의 미끼가 겁나 신선하다. 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결국 주말에 그 유혹의 빨간 미끼를 트렁크에 싣고 물가로 향했다. 동반자가 며칠 동안 너투브와 지인 찬스로 물고기와 다슬기가 함께 있는 멀티포인트를 찾아냈던 것이다. 포인트에 도착해보니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들 빨갛고 파란 다슬기통을 들고 물속에 앉아 쭈그리고 있는 폼이 재미있다.

 

동반자가 자기 장비에 채비를 하는 동안 나는 다슬기통을 들고 물가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간다.

물가에 가만히 서서 물속을 들여다본다. 

까만 송사리들이 리본처럼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소금쟁이도 떠 있고,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실잠자리도 날아다니고 있다. 물가에는 이제 막 태어난 듯 굵은소금 만한 다슬기들이 다닥다닥 돌에 깨알같이 붙어있다.


동반자를 돌아보니 채비를 하느라 아직 여념이 없다. 장화도 신어야지, 루어도 골라야지, 토시도 해야지, 낚싯바늘도 끼워야지... 짐도 날아와야지..


사람들이 엎드려있는 물속까지 가다 보니 허벅지 위쪽까지 잠긴다. 이미 속옷도 젖어버렸으니 옷 안 적시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물속으로 가만히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다슬기 통을 물 위에 올려놓고 물속을 들여다본다. 


다슬기통 투명한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물속이 꼭 수족관 같다. 일렁이는 물살은 없어지고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다슬기통만한 어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송사리들은 유선형의 몸으로 물살을 타고 재빠르게 유영을 하고, 모래무지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듯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내가 손을 내밀라치면 도망을 치는 신속성을, 유충들은 자기 몸 만하게 돌들을 부착시켜 착시를 일으키고 있었고, 징기미들은 얇은 다리들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수초 사이에 숨어있는 위장술을 보여주었다. 

그 작은 에리어에서도 각자 자기 개성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조화롭게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 같은 영역에 있으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자기만의 개성들이 있는데도 남의 개성을 질투해서 폄하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짓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나와 동반자도 같은 에리어에 살면서 서로 할퀴면서 상처를 내고 그 상처에 배려와 사랑이라는 약을 바르며 견고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그렇게 다슬기통 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동반자가 어깨를 친다.

 '또 해찰하네.. 다슬기를 잡으라고, 이 사람아! 물속 구경하러 왔어?'

'잡으려고 보고 있는 건데!' 

괜히 민망해서 한마디 거드는데 돌 틈에 새끼손가락 한마디만 한 다슬기가 보인다. 

얼른 집어 들고는 '이거봐라.. 이거 잡으려고 보고 있었단 말이야!' 했더니 동반자가 '아놔'하는 얼굴로

 '열심히 해.. 오늘 저녁에 다슬기국 먹는 거지?' 한다.

'아니.. 매운탕 먹는 거 아님?' 

그러나 동반자는 이미 멀리 가고 있었다. 기왕지사 왔고 옷도 다 젖었는데 말씨름이 무슨 소용이냐 싶어서 돌 틈을 보고, 큰 돌을 뒤집어 다슬기 잡이에 몰두했다. 


잡은 다슬기를 손바닥에 놓고 살펴보니 딱딱한 껍질 안에 뼈도 없는 여린 몸을 숨기고 거친 물살과 무거운 돌 틈을 넘나들며 물속과 밖의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면서 사는 게 사람 사는 것과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적을 봤다고 해서 다시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살 수도 없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 밖으로 여린 몸을 드러내며 성장해간다. 사람도 집 밖에서 사람과 그 외의 것들에게 상처를 받고 나의 안락한 집으로 들어와서는 여린 마음을 드러내며 파이팅을 외치거나 눈물 한 컵 쏟아내면서 아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이면 다시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가.

집이 이렇게 사람과 동물, 곤충과 연결점이 있다는 사실에 무릇 목숨이 있다면 다들 집에 인생의 척도를 두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엔 인생의 척도가 성공=집, 성공=차, 성공=사람, 성공=경험 등으로 다양해지기도 했지만...


시간은 잘도 지나 3시간이 지나고... 나는 해찰(주변에 무슨 나무가 있나, 무슨 꽃이 있나, 무슨 곤충이 있나)하다 다슬기 잡다를 반복하여 다슬기와 조개를 1개 밥그릇 양을 잡았다. 동반자도 꺽지 댓마리를 잡아와서 더 이상 입질도 없다고 철수하자고 했다. 나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슬슬 지쳐가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가기 싫은 나를 미끼를 물게 해서라도 여기까지 데리고 온 동반자가 밉다가도 오늘 다슬기를 보면서 생각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나를 생각하니 동반자가 고맙기도 하다.


이젠 동반자의 취미인 낚시를 따라다니는 일이 심심하지는 않아도 즐겁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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