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요일,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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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퇴사한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자 결심했다. 아침요가 수업을 듣기 위해, 퇴사 마지막 주 회사에서 월루 짓을 하며 요가원을 등록했다. 오늘이 그 아침 수업의 첫날이었다. 7시에 시작하는 요가 수업을 듣기 위해, 6시 20분에 일어났다. 회사 다닐 때 보다 20분이나 일찍 일어난 시각이다. 회사를 다닐 땐, 6시 40분에 일어나 7시 45분에 집을 나섰다. 이보다 한 시간 앞서 같은 길을 걸으니,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보였다. 가게를 여는 사람, 등산을 다녀오는 사람. 수십 번을 보낸 ‘수요일’이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펴지지 않는 등과 허리를 피려 노력하며 요가 수련을 했다. 선생님은 내 등을 만지며, “꾸준히 나오세요.”라고 간결하게 말했다. 속으로 ‘저도 제 몸에 문제가 많은 걸 알고 있긴 했어요.’라고 대꾸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 열이 올랐다. 아침 7시에 수련을 하니, 내 마음과 몸에 더 잘 집중되었다. 수련을 마치고 7시 50분쯤 다시, 집으로 향했다. 7시 50분쯤은 원래 집에서 내리막길을 걸어 출근하는 시간이다. 웃기게도, 그 시간에 항상 만났던 출근하는 낯익은 얼굴들을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만났다. 한 아주머니는 계속 힐끗힐끗 뒤돌아 내 얼굴을 확인하셨다. 아마 속으로 ‘쟤 매번 내리막길에서 출근하던 애인데, 왜 나랑 같이 오르고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운동기구가 구비된 공원이 있다. 나는 항상 출근하며 공원에서 운동 중인 어른들을 봤었다.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와 어깨 시원하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 공원을 지나치며 올라가던 중, 어른들 무리에 섞여 운동기구를 체험했다. 생각보다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팔과 어깨를 풀어주었다. ‘이런 느낌이군’ 생각하며 집에 올라왔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을 시간. 그 시간에 드립커피를 따뜻하게 내렸다. 커피를 마시며,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생각보다 이른 옷장정리를 했다. 옷장정리를 하며, ‘역시 옷은 죽을 때까지 안 사도 될 것 같긴 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옷장정리를 하고 허기가 져, 김치우동전골을 끓여 먹었다. 학교랑 회사 다닐 땐, 아침을 먹어본 날이 손에 꼽는데, 이것도 시간의 공백이 준 여유로움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정리했다. 우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야겠다 결정하여 무려 3권이나 선정했다. ‘리틀 라이프‘, ’ 주식투자 처음공부‘, ‘서비스 기획 용어사전’ 이렇게 3권. 의미가 각각 있다. 현실을 벗어나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소설책 1권, 퇴직금과 그동안 쌓아둔 목돈을 잘 굴리기 위해 투자 책 1권, 그리고 재취업을 위한 책 1권.
원래 카페에 가, 사람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책을 읽을 생각이었지만, 매서운 날씨 탓에 마음을 접었다. 어쩌면 평일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진짜 백수가 된 거 같아서 회피하는 걸 수도 있겠다. 연차를 쓰고 평일 카페에 방문했을 때,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은연중 ‘나는 연차 쓰고 온 거지. 나에게는 돌아갈 직장이 있다. 난 엄연한 노동자다.‘라는 이상한 호기로움을 갖았던 것 같다. 지금 백수 신세에 그때 마음을 되돌아보려니 잘 이입이 안 돼서 추측형으로 밖에 쓸 수가 없다. 그러다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라 판단하고 꿈꾸던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읽는 중간에, 뉴스 내용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청년 실업 최고치, 청년 구직률 역대 최저’ 속으로 ‘난 아니야, 난 아닐 거야.‘라고 생각해도 내가 백수가 된 이상, 내가 3개월 안에 구직이 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마음과 자아란 정말 한 없이 덧없다. 활자에 집중하자, 나를 따라다니던 불안감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들었다. 역시 낮잠이 최고의 피로회복제다.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발레 수업을 들을 것이다. 땀 흘리고 씻고 잠에 들면 수백 번 맞이했지만 또 다른 내일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