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무거나 좋아요”가 싫어졌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하늘을 물들였던 단풍과 은행나무 잎들은 아래로 떨어져 거리를 알록달록하게 만든다. 나는 이력서도 넣고, 알바도 구하고 면접 준비도 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최근 주 5일 운동하는 목표를 세웠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주 3일 까지는 괜찮은데 주 4일이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잔근육통과 3일 치의 노곤함이 밀려온다. 주 5일 운동이 일상이 되는 날까지 계속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1. “아무거나 좋아요. “ 가 이젠 싫어졌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나는 언쟁 만들기가 싫다. 그래서 정말 나에게 어떤 해가 되거나 보편의 도덕, 법, 윤리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면, 상대의 의견에 수긍하거나 수긍하는 ‘척’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오면 “아무거나 괜찮아”, “둘 다 좋아”라는 말은 일상이었다. 아주 사소하게는 점심을 정할 때, 친구들과 모임 장소를 정할 때 나의 단골 멘트였다. 나는 표면상 배려차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말이 일상화되면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는 점점 멀어졌다.
이런 태도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운전과 면접이었다. 초보운전자로서 나는 골목길이건, 차도건 상대방 차와 행인을 배려하는 것이 가장 좋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도로 상태나 뒤에 오는 차를 고려하지 않고 멈춰서 기다리기 일 수였다. 하지만 이런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위들이 결코 배려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경적을 울려야 할 땐 세게 울리는 것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내 차를 먼저 적극적으로 모는 것이, 내 의사를 확실히 전하고 서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적인 배려가 좋은 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면접은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는데, 면접에서 정말 별 걸 다 물어봤다. 가치관, 인생 고난, 뿌듯함을 느낀 경험, 취미, 스트레스받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명명하는 것은 다르다. 언어와 글을 통해 좀 더 명확해지는 것이다.
두 경험을 통해 “아무거나 좋아”라는 내 태도는 분쟁을 만들기 싫다는 이름 하에 ‘나는 이거에 대해 관심 없고 말하고 싶지 않아 ‘의 숨겨진 뜻이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작은 것 (점심을 고르는 것, 생일 선물로 어떤 것을 받고 싶은 지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정말 내 의견을 말해야 할 때 (연봉협상 이라든가, 전세 계약 할 때, 보험사와 합의할 때)는 갑자기 내 마음과 생각을 잘 알아서 타인에게 어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거나 좋다’는 말이 싫어졌다. 진짜 타인을 배려하는 건 내 의사를 정확히 말하는 것이라는 걸, 나를 잘 알기 위해서라도 생각하고 말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