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일을 해도 부끄러운 자의식 과잉.
나는 내가 거의 20년 동안 꿈꿔왔던 직업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직업과 전혀 상관없는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희망란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패션 디자이너'라고 적었다.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학과에 가기 위해서 끝없이 공부했으며, 대학생이 되어서도 관련된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듣으며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외부활동을 하고, 단기 연수도 다녔다. 관련 업계 아르바이트와 인턴도 했었고, 그렇게 해서 디자이너로 취업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하던 브랜드는 아니었고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정말 잘 맞을 줄 알았다. 나는 '일이나 공부'를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그렇게 해서 나온 성과로 성취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으니까, 당연히 이 회사에서 만족하면서 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재미가 없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바라던 직업을 가지면 재밌게 하루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디자이너' 일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했다. 원래 공부를 하려고 하면, 뉴스도 재밌고 청소도 재밌다고 하지 않나? 나도 회사를 다니니까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다가 '재밌다!'라고 느낀 패션과는 상관없는 온라인 사업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일은 정말 재밌었다. 내가 직접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잘해도 내 책임이고, 못 해도 내 책임이라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감을 잡아가는 느낌도 들었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요즘 뭐 하고 있어?"라고 하면 당황하고 말을 얼버무리게 되었다.
참 웃긴 일이다. 나는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나와 잘 맞는 건 물론이고, 내 가족도 다 응원해주었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았고, 평가하지 않았고,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주변에서 물어볼 때마다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서 외면했지만, 계속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터놓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필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때도 덮어놓고 무시했던 생각들을 다 적어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적은 뒤, 펜을 내려놓고 든 생각은 다들 나에게 '어린 나이에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건 큰 복'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게 나를 잡는 발목이 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꿈꿔왔던 수준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될 거니까 나의 예견된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직업이 되었는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 오히려 준비했던 그 과정은 다 즐겁고 재밌었는데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니 모든 게 지루할 수가 있나? 그 혼란스러움을 가다듬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만두고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지만, 견고했던 꿈에서 생겨난 첫 균열은 나의 마음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물음표들이 마음을 꽉 채웠다. 나는 왜 이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지? 왜 부끄러워하는 거지?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옷을 사랑하고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멋'이었다. 예체능만이 주는 그런 멋이라고 해야 할까?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하면 뭔가 멋있지 않은가. 대학교 시절 우리 학과는 유독 그런 '학과 뽕'에 차오른 과였는데, 그래서 다른 학과들은 과잠에서 학과 이름을 빼고 있을 때, 우리 학과만 마네킹과 재봉틀 그림에다가 우리 학과명을 꼭 넣어야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나 역시도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갈 때 재봉 키트와 화구통을 들고 다니면서, 묘하게 뿌듯하던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매일같이 야작을 하면서 잘 버틴 것도 이런 뽕이 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정도면 진짜 거의 마약'뽕'인 건가?) 그런 '멋짐'에 심취했기 때문에 그런 허상뿐인 '멋'을 찾아다녔다. 각자의 멋이 있지만 나에게 맞는 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근데 이러한 멋이 없는 직업이라니, 별안간 혼자 부끄러워진 것이다.
나는 '예술가'가 될 줄 알았는데, 내 디자인을 하고 '멋'진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혼란스러웠다. 나의 디자인은 매우 마이너 하다. 항상 그런 얘기를 들어왔고 나도 내 취향을 고수하면 돈을 벌어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은 못 버는, 고독하지만 뚝심 있는 예술가로 살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돈이 정말 중요한 자본주의 사람이라서, 내 취향을 위해서 경제적인 부분을 희생할 수 없다. 멋있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든 브랜드를 낸다면, 예술가가 되었다는 생각에 직업이 부끄럽지는 않겠지만, 쭉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예술가'로서 살아가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았지만, 나는 예술가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그럴 수 없다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 예술을 부여잡고 '무조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멋지다'라고 되뇌었는지 모른다. 여기에서 오는 자의식 과잉이 나의 새로운 직업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웃기게도 나는 내가 이 부끄러운 감정을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더 부끄러웠다. 이 무슨 부끄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부끄슈탈트 붕괴도 아니고. 부끄러움의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나는 이 감정을 친구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명확해진다. 말을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넓은 면을 볼 수 있다. 이런 감정을 얘기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 한나에게 얘기했을 때는 자기 자신도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한나도 나와 같은 과 동기로, 패션이 아닌 다른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전부터 패션이 아닌 다른 필드에서 일을 고민했었고 작은 회사라고 하지만, 그 업계에서 꽤나 알아주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이때 뭔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가 원래도 자기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의 필드를 찾아서 나아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일이 부끄럽다니. 또, 친구 해결이한테도 얘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과 선배인데, 공무원 준비를 해서 이번에 합격을 했다. 해결이는 "내가 공무원 하는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날 비웃거나 부끄럽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듯이, 똑같다. 네가 사업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고 그 길을 응원하고 싶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해결이가 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일 14시간 공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존경스럽다고 생각했지, 무슨 공무원 준비를 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내 지인이 나처럼 패션과 관련 없는 일을 한다고 하면, 나는 응원해줄 것이고 본인이 원하는 도전을 하는 모습을 멋있어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가혹해지고, 조급해지고, 엄격해진다. 나는 그저 자의식 과잉의 상태에 있어서 그 일을 부끄러워했다. 나 자신에게 씌워둔 이미지에 갇혀서 그 이미지 밖의 모든 모습을 거부하려 했다. 온라인 사업 자체를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내가 꿈꿔온 이미지가 없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내가 씌운 프레임에서 없애고 나를 '행인 1'로 치환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너그러워진다. 내가 생각하고 꿈꿔왔던 모습은 내가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면서 선택과 행동을 하는 내가 나 자신이다. 꿈속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그리고 문뜩 생각해보니, 내가 그 멋 하나로 버틴다면, 꼴이 참 우스워진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것도 내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재밌지 않고 일이 너무 싫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가, 딱 한번 자기소개할 때 "저 패션 디자이너예요."라고 말할 때만 뿌듯함을 느낀다면? 5초도 안 되는 순간들을 위해서 인생을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고 길다. 자기소개만을 가다리는 모습 자체가 멋없고 부끄러운 건 당연하고. 만약 이마에 "I'm a fashion designer."라고 타투를 하고 매일 선거유세를 돌고 있다면 해볼 만하지만, 나는 이마 타투의 고통을 참아낼 생각도 없고, 이미 전 회사에서 소확횡 (소소하고 확실한 횡령)을 했기 때문에 정치인이 되기엔 꽤나 논란이 많을 것이다. 역시, 하루하루 재밌어하는 일에 집중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소개할 때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낫겠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난 지금, '본인의 직업이 부끄러운가?'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은 부끄럽다. 꿈에서 깨어나 '예술가'가 아닌 내 모습을 꽤나 받아들였다. 다 받아들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 나아졌다. 부끄럽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게 됨으로써, 부끄비우스의 띠를 끊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서서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부끄러운 이유가 남아있다. 그건 바로 돈이다.
나도 어엿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번다면, 직업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용돈벌이 수준이다. 어떤 이는 돈을 못 벌어도 자신의 직업을 사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나는 돈이 너무 좋고 중요한, 자본주의에 절여진 장아찌와 같은 사람이다. (만약, 엄청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 자의식 과잉에 대한 얘기도 없을 것이고, 애초에 이 일을 부끄러워할 생각도 안 들었을 것을 장담할 수 있다.) 이 장아찌는 돈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정리했냐고? 정리 못하고 그냥, 더 열심히 해서 빨리 그만큼의 돈을 벌기로 했다! 그냥 조금 부끄러워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거의 20년 된 꿈 꿔온 직업을 그만두는, 즉 자의식 과잉을 한 겹 벗겨내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필요했는데 짧은 시간에 '돈을 못 벌어도 내 직업을 사랑할 줄 아는' 새 사람이 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약 20년 동안 꿈꿔온 직업도 텅텅 빈 지갑 앞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는데 몇 개월 된 직업을 그 정도로 사랑할 순 없다. 또 어느 정도는 적당히 부끄러워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합리화해본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더 열심히 하도록 하는 성장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내버려 두자. 지금은 좀 더 달려야 할 때가 맞는 것 같으니.
언젠가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와 같은 꿈은 너무나 제한적이고, 꿈보다는 원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걸 이루었을 때 오히려 공허함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명사보다는 '내 가치관을 보여주는 창작을 할 것이다'와 같은 동사가 되어야지 지속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가 꿈을 이루었을 때의 공허함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당혹감이 있었다.) 왜 동사형으로 꿈을 키워라는 지는 알 것 같다. 직업을 꿈으로 삼다 보면 당황스러운 일들이 발생한다. 진짜 그 업계에서 일을 하는 것과 겉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도 갭이 크기 때문에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취업 합격과 같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받게 되는 명칭에 가깝다. 내가 어마 무지한 디자인을 하지 않더라도, 아니 그냥 디자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회사에 취업하게 되면 그날부터 나는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내가 계획한 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니까, 내 꿈에서도 이리저리 갖다 붙일 수 있는 융통성이 있으면 받아들이기 편할 것이다. 이제 누가 꿈을 묻는다면, 명사가 아닌 동사로 대답할 수 있도록 새로 꿈을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자의식을 똑바로 인식하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