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처음으로 돌리는 날이다.
아일랜드는 직접 발로 뛰어가며 잡을 구한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영어를 써야 한다니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난 모두 감당하고 이곳에 왔다.
가장 먼저,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출력하고, 지도를 열어 마음에 드는 장소들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목표는 이력서 5장.
나는 프랜차이즈보다는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로컬 카페를 선호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가까운 개인 카페를 찾았다.
막상 카페 앞까지 오자 막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카페 크기도 작아서 그런지 뭔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카페 주변을 서성이면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하고만 있었다.
이렇게 시간 끌다가는 점점 걱정이 더 커질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문을 확 열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린 다음 준비한 대로 멘트를 꺼냈다.
'Hi! Can I ask something? Actually, I'm looking for full-time job, are you guys hiring now?'
친절한 직원은 나에게 이력서 있냐고 물어봤고 예상한 대로 이력서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카페 경력과 자격증을 어필하며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잠시 후, 한 직원이 매니저에게 전달하겠다며 이력서를 받아주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아마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을 거다. 기억도 흐릿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고 무엇보다 마음이 후련했다.
한국에서 내가 이력서를 돌린다고 상상했을 때, '외국에서 영어로 어떻게 이력서를 돌려?'라는 상상력이 나를 집어삼키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상상과 현실은 늘 다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친절한 응대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그 기세를 몰아,
두 번째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선 첫 번째보다 더 담담하고, 더 심플하게 흘러갔다. 오히려 쉽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어렵고 무거운 건 '처음 한 발'을 떼는 순간이다. 그걸 넘어서면 조금씩 수월해지는데 말이다.
기분 좋은 흐름을 타고, 이번에는 집 근처 아이리쉬 펍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바텐더로 일했었는데 칵테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손님들과 소통하는 것도 재밌었던 경험이 있었고 또 펍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에서 바텐더로 일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펍은 카페랑은 정말 달랐다. 어두운 조명으로부터 오는 압박감과 꽤 럭셔리하게 꾸며놓은 인테리어, 뭔가 더 자유롭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나를 괜히 겁나게 만들었다. 뭔가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바텐더로서 경력도 어중간한 내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를 방해하는 감정들을 떨쳐내고, 일단 들어가서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도 그는 무척 친절했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매니저에게 전달해 줄게요.” 가 아닌 다른 말을 빠르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난생처음 듣는 강한 악센트였다.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펍에서 일한 경험을 어필했다.
매니저는 반응이 좋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말했는데 나에게 연락을 주겠다는 말 같았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Thank you!” 인사를 남기고 도망치듯 나왔다.
아마 그들은 내가 속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멘탈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진짜 큰일이다'
'내가 이렇게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진짜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 게 가능한 건가?'
하며 나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의문이 나왔고 그 답을 명쾌하게 찾을 수 없었다.
왜냐면 영어를 갑자기 잘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정말 워홀을 온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영어를 잘했을까?' 궁금해졌다.
당시 나는 아일랜드 생활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었고, 운 좋게도 펍에 들어가는 장면도 찍어뒀다. 그래서 나는 펍에서 나오자마자 그 영상을 무한 반복하며 도대체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자막 번역 앱을 써야만 해석이 가능했다. 그 현실이 나에게 크게 느껴지면서 도저히 그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다음 이력서를 돌리기에 이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공을 보며 축 처진채 앉아있다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이런 안타까운 썰을 풀면서 용기를 다시 얻어야 했다. 아직 못 돌린 이력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심신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을 겨우 잡으면서 다시 생각해 봤다.
'어쨌든 난 아일랜드에 왔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건 팩트이다. 최악의 경우를 맞이하더라도 일단 최선은 다 해봐야 한다. 누구는 40장을 돌렸다고 한다. 나 또한 최소 40장은 돌려보고 생각하자.'
라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꾸역꾸역 나머지 2장의 이력서도 마저 돌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사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