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구하고 일도 구하고 마음이 편해진 지금,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 제대로 된 첫 여행일 것이다.
먼저 다른 나라로 여행 가기 전에 아일랜드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아일랜드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골웨이'를 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더블린이 아니라 골웨이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큰 도시의 붐비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여러모로 내 성향과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입맛대로 선택하기에 아일랜드는 너무 작은 나라였다.
더블린을 제외하고는 교통, 구직, 집 구하기 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골웨이에 산다면 비행기를 타러 갈 때마다 더블린을 거쳐야 했다.
결국 현실을 택해 더블린에 머물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달려 골웨이에 도착했다.
아일랜드다운 우중충한 하늘, 비가 올 듯 말 듯 불안한 날씨였다.
그래서 곧장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어떤 유명한 작품을 보고 근사한 곳을 가는 것보다 도시가 가진 바이브를 느끼는 걸 좋아한다.
로등 불빛이 번지는 거리, 작은 강을 잇는 다리, 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장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도시를 느낀다. 그러면서 나 또한 한껏 여유를 만끽하며 여행 속에 살아있는 나를 마주한다.
아일랜드는 그래서 내게 꽤 흥미로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한국과는 건물, 사람, 문화 모두 다르지만, 역사적으로는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골웨이는 다른 도시보다 한층 특별했다. 아담하고 귀여운 분위기 속에 늘 축제가 열리는 듯한 기운이 있었다.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고, 치안도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허기를 달려 유명하다는 햄버거 집에 들렀다.
소문대로 맛나긴 했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악한 가격을 볼 때마다 한국을 떠오르게 만든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주변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도착할 때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고 급히 성당 안으로 대피했다.
골웨이 성당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기억이 남는 성당 중 하나이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두운 조명과 모던한 디자인이 때문인지 오래도록 인상이 남는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난 긴 의자에 앉아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밖에는 비가 멈출 기미도 없이 내렸고 의도치 않게 성당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산도 없었고 가지고 있는 우비만으로는 움직이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누가 보면 나를 독실한 신자로 봤을 것이다.
날씨와 눈치 싸움 하며 나갈 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발길을 옮겼다.
골웨이 대학교를 둘러보고 저녁을 해결한 뒤 숙소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지나가던 길에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발견하고는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안은 기대한 대로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 창틀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자리,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모두 내 취향이었다. 수많은 카페를 다녀봤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숙소로 향했다.
재밌게도 내가 예약한 이 숙소는 아일랜드 오기 전에 정원일 대신하려고 컨택했었던 곳이었다.
결국 일정이 맞지 않아 정원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손님으로 오게 된 것이다.
숙소에 도착하고 방을 소개받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근사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저렴한 가격에 깔끔한 개인실. 마침 공용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다녀온 음식점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고 떠들었다.
요동치는 날씨에서 벗어나 따뜻한 숙소 안에서 사람들과 수다 떨며 마무리하는 하루.
이런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내일은 골웨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웅장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모허 절벽’을 보러 가는 날이다.
늘 TV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커졌다.
내 생에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일의 설렘을 품은 채로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