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허 절벽을 보기 위해 투어를 예약했다.
유럽 여행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투어를 예약해 본 것도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부터 내 생에 최초로 경험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 절벽으로 향했다.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아일랜드에 온 이후, 이렇게 마음 평화로운 순간이 있었던가 싶었다.
날씨도 완벽했겠다, 초록색들 사이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막힘없이 달리는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일랜드에서 오늘처럼 이렇게 좋은 날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소중한 날들이었다.
난 운이 좋게도 그런 날에 모허절벽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버스를 타는 동안 창문 밖의 풍경을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활하고 동화 같은 자연이었다.
유럽 사람들도 이 자연풍경을 보러 아일랜드로 여행을 온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인 것 같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타고 내린 첫 번째 목적지는 '아일위 동굴'이었다.
가이드가 무언가를 설명했었는데 영어다 보니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조금 헷갈렸다.
알고 보니 동굴 안을 들어갈지 말지를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안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고 길었다.
동굴 안을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정말 1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 자유롭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욕망이 막 끓어올랐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 동굴이 꽤 액티비티 했던 게 마치 '인디아나 존스'처럼 작고 좁은 통로를 지나가거나 높은 곳에서 절벽같이 깊은 아래를 내다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중간중간 조금 추웠던 것을 빼면 꽤 재밌는 시간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기다리던 모허 절벽에 도착했다.
해리포터와 어벤저스 촬영지로 유명한 그곳을 실제로 내 눈으로 본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절벽을 보기 위해선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했다.
그 길조차 바다와 초록빛 초원이 어우러져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올라가는 중에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어떤 한 사람이 길목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날씨 아래, 거대한 모허 절벽의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선율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절벽을 바라보는 울타리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허절벽을 한눈에 꽉 찰 정도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 웅장함은 굉장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매력적으로 절벽이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거대할 수 있는지 감탄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난 정말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몇 분동 안은 계속 눈에 담아 두기 위해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반대편 전망대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골웨이에서 모허 절벽을 본 건 평생 후회 없는 선택이구나’ 하고 확신했다.
그 이후에 가이드가 추천하는 아이리쉬 펍에 들려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랜덤 하게 자리를 앉았는데 내 앞에는 2명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였고 미국에서 여행 왔다고 했다.
난 무난하게 피시 앤 칩스와 사이더를 주문했다.
음식보다도 아이리쉬 펍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공간이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어떤 한 바다 앞에서 잠시 정차했다.
가이드가 숨겨진 아름다운 곳이라며 잠깐 보고 가자고 제안한 곳이었다.
별 기대 안 하고 내렸는데 의외로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절벽 위에서 바다를 보는 뷰였다. 초록색 풀과 꽃들이 조화롭게 깔려있고 절벽 사이에서 첨벙이는 파도가 정말 장관이었다. 또 저 옆에서 파도치고 있는 해변을 바라보는 것도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마지막 목적지인 '던귀에어 성'을 보기 위해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
던귀에어 성은 은근히 작았는데 딱 보기 좋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마치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를 연상하게끔 하는 첫인상이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뾰족한 디자인과 초록초록한 자연 사이에 성만 덩그러니 있는 게 환상 속의 로망을 실현시켜 주는 듯했다.
성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고 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강들이 성 주변을 감싸고 있었고 적당히 따스한 햇빛이 그것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장면에 황홀함을 느껴 본능적으로 사진으로 남기면서 이 여행에 마무리를 짓는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그렇게 알찬 스케줄을 마치고 골웨이 시내에 돌아왔고 어느새 난 다시 더블린으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골웨이 여행은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아일랜드가 어떤 나라인지 정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해 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아일랜드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에게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말해주었다.
이 여행은 내 아일랜드 인생에서 기분 좋은 출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