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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다!

by 관새로이

이사를 한 뒤로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집 주변에 있는 카페부터 시티센터까지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게 내 일과가 되었다.


한국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알바를 발로 뛰어가며 구하자니 느낌이 이상했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앱이 없진 않다. 근데 그걸 이용해서 구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그냥 직접 돌아다니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꽤 아날로그적이긴 하지만 뭔가 퀘스트를 깨나 가며 성장하는 것 같아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

게임 속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카페에 들어가서 CV를 내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 점점 적응해 나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역시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일자리에 비해 구직자가 훨씬 많다 보니, CV를 낼 때도 눈에 띄는 게 중요했다.

나도 차별화를 위해 이력서를 다시 만들고, 카페에 들어서면 어떤 멘트로 시작할지, 어떤 분위기를 보여줄지 계속 연습했다. 경험과 자격증이 있다는 것도 꼭 어필했다. 빨리 일을 구해서 안정감을 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블린 시티센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발을 넓혔다.

유럽에서 유명한 '코스타커피', '스타벅스', 아일랜드 프랜차이즈 '인썸니아'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카페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갔다.


그중에서도 근처 쇼핑센터 안에 있던 코스타커피를 갔다.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에게 CV를 건네며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분위기가 유독 좋았다. 친근했고, 대화가 짧았지만 잘 통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또 당장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고는 하는데 뭔가 나를 필요로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아쉬움을 표현하며 그래도 연락을 꼭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거기서 일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근데 거긴 다른 곳과는 달랐다.

내가 그렇게 기분 좋게 CV를 돌린 적은 없었다.

대부분 별 대화 없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정말로 그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아일랜드 번호로 처음 걸려온 전화라서 더 떨렸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였는데 안 그래도 영어도 잘 못하는데 긴장한 나머지 여러 번 되물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약속을 잡고, 드디어 첫 면접을 보게 됐다.

내가 지원했던 코스타 커피

면접은 은근 편안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고 연습한 대로 말도 술술 나왔다. 오히려 면접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다른 카페에서는 채용을 하기 전에 같이 일을 해보는 '트라이얼' 과정을 거치는데 코스타커피는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즉, 면접을 보는 순간 채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얼떨결에 갑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그 사실에 너무 기뻤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상황상 첫 한 달 정도는 풀타임으로 일하기는 어려웠고 당장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 생각지도 못하게 스타벅스, 인썸니아, 로컬 카페 등에서 연락을 받았고 모두 합격할 수 있었다. 급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스타벅스는 제외했다. 매니저와 면접을 봤을 때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고 딱딱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로컬카페에서도 나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에 오래 못 버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인썸니아와 코스타커피 둘 중에 어디를 가야 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러 조건을 따져봤을 때, 인썸니아가 완벽해 보였다. 또 크지 않아서 바쁜 카페도 아니었고 복지도 비교적 괜찮았다.

코스타커피는 전체적으로 인썸니아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일단 더블린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에 있는 카페여서 바쁜 매장이었다.


아마 아일랜드에 살면서 가장 신중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난 아일랜드 있는 동안에는 잦은 이직을 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한 곳에서 제대로 일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CV를 돌리면서 찍었던 당시 영상

그래서 난 결국 코스타커피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같이 일하는 동료가 더 중요했고 또 직원 수도 더 많았고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코스타커피가 지금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냥 개고생 좀 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한국인 동료가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구직이라는 큰 벽도 넘겼다.

지금 돌아보면 난 운이 정말 좋았다. 따지고 보면 일주일 정도만에 일을 구했고 심지어 선택도 할 수 있었다. 시기적인 운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내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 차이가 더 많은 기회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에서 쭉 지내오면서도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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