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의 첫 번째 이별
벌써 정원일 마지막 날이다.
영어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물론 지금도 영어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데 정말 사람은 참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인 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올리브의 영어가 귀에 익었고, 첫날과 달리 마음도 훨씬 편안해졌다.
또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 올리브의 스타일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원래 약속했던 날보다 조금 더 일찍 떠나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이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최대한 빨리 이사하길 바랐지만, 정원일이 끝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 일정에 맞췄다.
올리브도 흔쾌히 동의했다.
덕분에 모든 과정이 척척 진행되었고 지체되는 일도 없었다.
마지막 작업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뒤로 새로 왔던 스위스 중년 여성분, 올리브,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함께했다.
수많은 작은 화분을 분갈이하고, 꽃과 작물도 심었다.
손쉬운 작업이었지만 난 항상 같이 작업을 할 때마다 영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늘 긴장했다.
이 날에도 눈치껏 알아듣느냐고 고생했던 기억이다.
스위스에서 온 그분은 정말 씩씩하게, 열심히 일하셨다.
아일랜드는 처음이라고 했는데, 여행이 목적이라고 했다.
쉬는 날이면 올리브 집 앞 잔디밭에 놓인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여유롭고 온전히 쉬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라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살면서 저렇게 여유를 느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작업을 마치고는 마무리 정리를 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올리브는 내게 “벌써 떠나는 날이 되었냐”라고 하며 활짝 웃었다.
나는 영어 때문에 힘들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는데, 올리브는 이렇게 말했다.
“너 처음보다 영어 많이 늘었어.”
그 말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다음 날 아침,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올리브와 마크를 찾았다.
마크는 이미 일찍 일어나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 마지막이라서 인사하러 왔어요. 올리브는요?”
마크가 부르자 곧 올리브가 1층으로 내려왔다.
올리브는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어디로 이사 가는지, 어떻게 갈 건지 이것저것 물으며 인스타그램도 교환하자고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한국인처럼 따뜻하다고는 들었는데, 이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올리브는 처음부터 편견 없이 친절했고, 나를 볼 때마다 웃어주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또 마지막 날,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해주니 나도 괜히 마음이 몽글해졌다.
마크는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늘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와인을 좋아했고 내게 수제 꿀을 준 적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크 차를 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의 기분은 영화 속 엔딩 장면 같았다. 후련하면서도 행복했고, 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난 용기 내서 마크에게 물었다.
마지막이기도 하고 항상 그래왔던 적막을 한번 깨보고 싶었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어요?”
마크는 평생 농사를 지어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넓은 땅과 정원, 근사한 집을 가지고 있는 부자였고 토지 일부에서는 꿀, 꽃, 작물도 기르고 있었다.
마크는 다리가 많이 안 좋아서 걸음이 많이 불편했는데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류장 앞에 다다를 무렵,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 사람들이 정류장을 떠나고 있었다.
마크가 듬직하게 무슨 일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내게 알려줬는데 역시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끝까지 웃픈 현실이다. 그래도 마크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마지막 감사인사는 똑바로 전했다.
이 특별했던 정원일은 나에게 아일랜드의 꽤 좋았던 첫인상이었다.
지금도 가끔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올리브의 인스타를 통해 소식을 확인하곤 한다.
이제는 이 모든 게 마치 꿈을 꾼 듯한 기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올리브의 댕댕이들, 다시 보고 싶다.
※ 버스는 문제가 생겨 결국 타지 못했다. 돌고 돌아 어렵게 이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해프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