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아일랜드에서 집 구하기

by 관새로이

어느샌가부터 이메일을 보내는 게 내 하루일과가 되었다.

하루에 5통, 많으면 10통. 내 집을 찾는 게 취미가 됐다.


정원일 하는 몇 주동안 아무리 컨택을 해봐도 거절 메시지조차 받는 게 어려웠다.

아일랜드에서 집을 구하는 유명한 사이트가 있는데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다 보니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 아일랜드의 주택난이 심각한 게 컸다.

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한국처럼 원룸을 통째로 빌려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집주인과 함께 살거나, 다른 사람들과 방을 나눠 쓰는 형태였다.

그런데 방 한 칸 월세가 백만 원이 넘는 경우도 흔했다.

현실을 직접 마주하니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껴지면서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집 때문에 불안한 나를 찍었던 영상

문득 최근에 갔었던 Japanense meetup에서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방을 거래하는 페이스북 여러 그룹에 가입하고 집을 고르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정했다.

페이스북을 통한 거래는 간단하지만 과정이 생략돼 있어 조금 꺼려졌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집을 구하는데 나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먼저 신뢰할 수 있는 집주인이었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거나, 무례한 집주인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방의 상태였다.
부엌이나 거실은 조금 부족해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방만 괜찮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페이스북에서는 소통이 빨랐다.

첫 연락을 준 집주인은 중국인 가족이었고, 별다른 대화 없이 바로 뷰잉 약속이 잡혔다.

아일랜드에서는 재밌게도 집주인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방 찾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집주인이 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집을 보기 전에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셋으로 장착하고 처음 집주인과 만났다.

내 방

첫인상은 꽤 좋았다.

선해 보였고, 미소도 진실돼 보였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깔끔한 성격 같았다.

아이들도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를 보여주며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어필했다ㅋㅋ

그게 도움이 됐는지 몰라도 다행히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집주인이 말하기를 너 방은 지금 한국 여자가 살고 있고 곧 떠날 예정이라 새로운 사람을 찾는 거라고 했다.

또 운이 좋게도 그 한국인 분이 집에 있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궁금한 건 모조리 물어보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문제는 바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방을 지금 바로 ‘킵’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뷰잉 기회가 주어지고, 그 사이 방을 뺏길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집이 100%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첫 뷰잉에서 바로 결정하는 게 좋은 선택일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킵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현금이 필요했기에 일단 돈을 뽑아 오겠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가족들과 상의하면서 결정할 생각이었다.

집 앞 공원

집은 내가 생각한 조건들을 충족하긴 했지만 여러 단점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있어 시끄럽다는 점, 셰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등이었다.

내가 과연 이러한 단점들은 감안하고 살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방을 계약하기로 굳혔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인 여자가 1년 동안 살았다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고 소음 문제도 풀타임으로 일할 경우, 불편한 게 없다는 한국 분의 말이 신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첫 뷰잉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내가 타지에서 영어로 방을 찾고 무사히 해결했다는 게 나름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또 큰 과제를 하나 넘긴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일만 구하면 된다!

keyword
이전 08화영어 초보가 해외 언어교환 모임에 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