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방학

by 필승작가

아이 셋과 함께 하는 방학생활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또 기대보다도 시끄럽다. 어느새 아이들은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 엄마'하고 끊임없이 부르지 않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직장을 휴직한 후 맞이한 긴 겨울방학은 각오한 것만큼 분주하지도 않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전히 나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속은 번번이 시끌시끌하다. 아이들의 하루 대부분이 컴퓨터 게임이고, 스마트폰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과 '방학 생활 규칙'을 정해서 실천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속이 부글거리는 일은 반복적이다. 규칙도 잘 지켜지지 않고..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보니 아이들은 최대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12시에서 11시로 사용 제한 시간을 앞당기면서는 다른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을 갖겠다고 스스로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전 11시까지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사용을 하지 않기
(처음엔 12시까지였으나 아이들의 제안으로 조정)



이 시간 동안 게임 외의 활동을 하기를 바랐다.

학습지나 계획한 학습, 독서 등을 할 수 있기를. 그림도 그리고 그밖에 다른 놀이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꼭 공부나 독서는 하지는 않아도 이 시간에 저희들끼리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시 이렇게 하니 아이들답게 노는구나'싶었고 앞으로 생활이 희망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3 큰아이는 아침 기상시간은 점점 늦어지더니, 거의 11시 가까이에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둘째 셋째도 이제는 이 시간을 즐긴다기보다는 잘 견디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학습지는 밀려있고, 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은 손에서, 나는 마음에서 놓은 지 오래다. 나름 각자 해야 할 일이 쌓인 탓인지, 그 좋아하던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


큰아이는 하루종일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후 6시가 지나면 신나게 게임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정이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새벽 2,3시까지 게임을 할 때도 있다.

9시, 10시면 잠자리에 들던 둘째 셋째도 이제는 제지하지 않으면 11시를 넘기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사회생활이고, 친구관계이며, 또 취미생활이다.

큰 즐거움이고 설렘이며 도전정신이고, 역할 놀이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의 하루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바라보면 딱히 잘못된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잘 살고 있다.'라고 생각될 때면, 나는 그들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대화는 가볍고 요청과 거절도 자유롭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세상 속에 있다가도, 어느 순간 내 속은 다시 시끄러워진다. 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아이들이 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적으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약속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 조용해졌다가 시끄러워졌다를 반복하는걸까.


우리 집 방학생활 규칙을 큼지막하게 적어놓고 보니, 저 글자 안에 내가 숨겨 놓은 의도들이 보인다.

아니, 의도라기보다는 꼼수에 가깝다. '11시까지는 게임 외에 어떤 것도 다 괜찮다'라고 했지만, 사실 늦잠을 자거나 빈둥거리는 모습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실망하고, 화를 냈다. 그리고는 또 '나는 왜 이런 엄마인가' 하고 자책한다.


그래서 어제는 잠들기 직전 아이들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엄마는 너희들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얼마나 멋진지 잘 알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약속을 하는 것도,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리고 지키지 못했을 때 지키지 못한 걸 미안해하는 것도.
엄마 마음을 살펴주는 것도, 정말 너무 멋져.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너희들 스스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심지어 엄마가 화를 버럭 내더라도,
그게 너희들이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야.
그냥 엄마가 화를 낸 거야.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 게임해도 엄마가 화를 내지 않으면 괜찮고,
어떤 날은 같은 시간까지 놀아도 엄마가 화를 내서
잘 못 한 거 같으면 그거 너무 이상하잖아.
너희들이 진짜 잘 못했다고 생각하면
그땐 엄마가 화를 내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화를 내는 것으로 기준을 삼지는 마.


나의 감정, 내가 가진 생각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이 우습다.

그리고 우스운 만큼 새롭고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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