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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 Nov 24. 2024

씩씩하게, "다녀오겠습니다!"

 아이의 세계 어디에 서 있는가? (2)

아이의 세계 어디에 서 있는가?  세계 어디에 서 있는가? (1)

아이가 자다 깨서 묻는다. 


"엄마, 나 내일 어떡해야 해? 내일 지민이가 나한테 못되게 굴면 어떡해?

내가 잘못했다고 따지면 어떡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 걸면 어떻게 해야 해?"

"음.. 우리 덕이, 지민이한테 나한테 사과해 달라고 말할 수 있겠어?"

"아니, 못 할 것 같아." 

"알았어. 일단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얘기하자." 


아이가 '이러면 어떡해, 저러면 어떡해?'라고 묻는데,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똑 닮았는지... 

엄마가 이러고 있으니 아이는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어떻게 해야지'를 생각한들, 이리 생각하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리 생각하면 저게 맞다 싶을 것이 분명하다. 

결론 나지 않을 결정을 내리겠다고,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아이라는 거울에 비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내 머릿속은 신기하리만치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결과가 실현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원하는 삶을 지원하는 지원자로 존재한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아이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관계에서 

평등하고, 온전하며, 건강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그런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아무도 네 몸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너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를.

너는 그 친구에게 사과받을 자격이 있다. 


내일 아침, 아이와 여기에 서서 대화하리라. 

더 이상 어떻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도 훨씬 편한 밤을 맞이했다. 




다음 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 팁(?)을 줄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냥 거기에 서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이번 일이 네가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어제도 말했지만, 아무도 네 몸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말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덕이는 충분히 사과받을만하거든. 그것만 분명히 알고 가. 

사과를 받고 안 받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는 덕이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친구랑 놀게 되든, 안 놀게 되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알았지?" 


나는 흔들림도 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오늘 학교에 가는 아이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학교 앞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런 나의 염려는, 

우리 아이의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큰 목소리와 

재바르고 가벼운 발걸음 뒤로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내가 보여주는 세계에 마음이 놓이고, 활기를 찾은 것처럼.   

그 세계로 마음 놓고 뛰어가는 아이 뒷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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