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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perlocal Dec 26. 2021

크리스마스, 하누카의 전통음식 그리고 콴자

아이비리그 타운 이야기 - 하노버 6


2021년도 이제 며칠이 채 남지 않았다. 이곳은 2-3일에 한 번꼴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직접 숲이 보이는 집 안에서 (우리 집은 특이하게도 한국처럼 바닥 난방 시스템이 깔려있다!) 따뜻한 난방을 켠 채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앞마당을 구경하고 있자니 핫코코아와 함께 하는 포근한 저녁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곧 슈퍼마켓으로 향한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 시즌이라 이 근방에서 생산되는 로컬 상품이 많은 코업 (Coop)에도 홀리데이 상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하나하나 구경해보니 그 다양함에 눈이 즐겁기도 했지만, 다양한 문화를 세분화해서 상품화한다는 것의 의미가 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고, 유대교 하누카 초콜릿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과일 케이크는 아마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레시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케이크는 칼로리가 높아서 사람들에게 농축된 에너지를 제공했다. 기원전 2000년 경 로마제국에서 발견된 과일 케이크가 가장 오래된 레시피로 그 당시에는 보리 반죽에 석류 씨앗, 잣, 건포도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에너지가 필요한 군인들이 자주 먹었다고 한다. 중세에는 꿀, 향신료, 과일 절임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주로 사냥꾼들이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을 때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다. 이후 과일 케이크는 유럽 여러 곳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발전되기 시작하는데, 13세기 시에나 공화국에서 즐겨먹었던 빤포르떼 (panforte), 1400년 대 드레스덴에서 시작된 스톨렌 (stollen) 등이 유명하다.


왼쪽부터 빤포르떼, 스톨렌, 플럼 푸딩


영국에서도 일찍부터 과일과 설탕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1500년 대 초기에는 과일 케이크는 고체 형태라기보다는 죽 형태에 가까웠다고 한다. 자두를 주요 재료로 해서 고기, 와인, 과일주스 등 넣어 만든 달지 않은 죽 형태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는 점점 넣지 않고 과일, 특히 자두를 더 많이 넣는 푸딩 (플럼 푸딩, Plum pudding)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귀족들이 한잔의 홍차와 곁들여 먹은 것이 플럼 푸딩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를 부르고 푸딩을 달라고 요청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푸딩을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다. 이때부터 과일 케이크가 크리스마스와 관련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영제국이 미국을 식민지로 삼은 후 영국의 전통이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에서도 이미 1800년 대에 상점에서는 과일 케이크를 영국 스타일로 디자인된 틴 케이스에 넣어 팔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지역마다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영국의 과일 케이크 하고 비슷한 개념의 케이크를 만들어 명절을 즐겼다. 위에서 언급했던 빤포르떼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시에나에서 처음 만들어져서 지금도 피렌체 등 토스카나 지역에서 빤포르떼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제노바 지역에서 즐겨먹던 빤돌체 (Pandolce, 달콤한 빵이란 뜻이다)나 또 비교적 최근인 1900년 대에 베로나에서 만들어진 아주 맛있는 빤 도로 (Pan d'Oro 금색의 빵이란 뜻이다)도 있다.


왼쪽부터, 제노바의 빤돌체, 베로나의 빤 도로, 밀라노의 빠네또네


역사적으로 이탈리아 반도가 이탈리아라는 국호를 쓰면서 통일된지는 1861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반도는 수백 개의 도시 국가들이 오랫동안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각 도시마다 명절을 즐기는 음식과 문화도 다 각각 다르다. 이 중에서 빠네또네 (Panettone)가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로는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 같다. 이곳 코업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로는 빠네또네가 제일 많이 진열이 되어 있었다.


빠네또네는 밀라노 공화국에서 유래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큰 빵' (빵을 뜻하는 pane가 접미어 -ttone와 합쳐지면 크다는 의미가 첨가된다)이라는 뜻이다. 빠네또네도 말린 과일이 들어있는 일종의 과일 케이크이지만 영국의 푸딩보다는 질감이 가볍다. 빠네또네는 1606년 문서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 당시에는 제노바의 빤돌체와 비슷하게 좀 더 높이가 낮고 효모를 넣지 않아서 덜 부풀어진 형태였다고 한다. 1800년 대에 와서 빠네똔 (panattón) 또는 크리스마스 빠네똔 (panatton de Natal)이라고 불리면서 지금의 형태로 발전했다.


1820년부터 2004년 사이에 약 5천5백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지금도 주요 도시에는 리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미국화된 곳이 많지만) 맛볼 수 있다. 나도 사실 이렇게 다양한 빠네또네를 미국 슈퍼마켓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기가 되면 과일 케이크와 빠네또네는 흔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하누카를 기념하는 상품은 유대교인 또는 유대인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싶다. 슈퍼마켓에서는 초콜릿 코인과 하누카 양초 (메노라, menorah)를 팔고 있었다. 초콜릿 코인은 이디쉬어로 돈을 뜻하는 젤트 (gelt, געלט)를 하누카에 사람들에게 주고받는 풍습에서 시작된 상품이다. 또, 드레이들 (Dreidel) 초콜릿도 팔고 있었는데, 드레이들은 옆면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바닥이 뾰족하게 나와 있어서 팽이를 돌리게끔 디자인되어 있는 하누카 전통 장난감이다.


하누카는 히브리어로 교육을 뜻하는 히누크 (hinnukh)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데, 중세 유럽 시대에 유대인 가족들은 명절이 되면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지역 랍비에게 동전을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식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동전을 주는 풍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1800년 대에 이르러서 하누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인들이 할로윈에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사탕을 모으는 것처럼, 유대인 아이들은 하누카가 되면 이 집 저 집 방문하여 하누카 동전을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동전 모양 초콜릿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재료와 크리스마스 케이크, 핫코코아 가루, 레드와인, 멀드 와인 재료를 구입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트머스 그린을 지나쳐 오는데,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을 해놓았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는 하누카를 기리는 메노라도 설치되어 있었다.


12월 26일부터는 콴자 (Kwanzaa)를 축하하는 키나라 (Kinara, 7개 양초를 꽂는 촛대)와 미슈마 사바 (Mishumaa Saba, 7개의 양초)가 설치될 거라고 한다. 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1966년부터 12월 26일부터 1월 1일까지 지속되는 공동체 축제이다. 시작은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하면서 일어난 와츠 폭동 (Watts Riots) 이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교수이자 액티비스트인 멀라나 커렝가 (Maulana Karenga)가 만들었다. 콴자라는 단어는 스와힐리어로 첫 번째 과일 (matunda ya kwanza)에서 따왔다고 하며 남아프리카에서 12월-1월 사이에 추수를 기리는 명절을 참고하여 비슷한 시기로 정했다. 미슈마 사바는 콴자가 지정한 7개 원칙 (결속, 자기 확신, 책임, 협동경제, 목적, 창의, 신의)을 의미하는 촛불로 왼쪽 3개 촛불은 빨간색, 오른쪽 3개 촛불은 녹색, 가운데 촛불 1개는 검은색이다.


다트머스 그린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와 하누카 메노라


한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미국에서는 이민의 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이탈리아 문화, 영국 문화, 프랑스 문화, 한국 문화, 중국 문화 등 다양한 문화를 골라서 즐기거나 또 동시에 같이 즐길 수 있다. 이런 다양성 때문에 겉으로 유럽과 비슷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유럽과는 많이 다른 사회다.


나는 개인적으로 획일적이고 단일한 사회는 지금 세상에서는 최강국이 되기 힘들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획일성을 모토로 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탑-다운 사회가 될 수밖에 없어 권위적 사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정답이 하나뿐이 없기 때문에 관용과 베풂이 사라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상업화한다는 것은 결국 다양한 문화를 선보인다는 것을 다수가 허용한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관용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 사회를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주민 이후 미국의 역사는 영국이 초석을 세우고 독립 후 여러 유럽인이 차지한 땅을 차지하면서 그 외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 살을 붙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본연의 DNA 때문에 다양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미국인들이 다양성을 결국은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허용해주었기 때문에 이런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미국 탄생 초기에 이민자를 배척하고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며 깰 유리천장도 애초에 만들어주지 않았던 사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쌓여가는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를 하나하나 기존 사회에 편입시켰고, 이제는 성별, 젠더, 성향 등의 존재하는 거의 모든 '차이'를 어쩌면 사회가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없애고 있다.


그러면 다양한 인종도 문화도 종교도 (종교가 다양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독교와 불교의 갈래인 종료만 다양할 뿐이다) 다양하지 않는 한국은 영원히 제2인자가 될 수밖에 없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새터민, 해외동포, 한국에 공부하러 또 일하러 온 외국인, 또 다양한 젠더 등 셀 수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관용적인 사회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창의적인 부를 창출할 거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이고 투명하고 솔직한 사회, 다양함에 의해 풍성한 사회, 비교라는 것이 무의미한 사회,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제 G7 가입도 가능한 국가가 된 한국도 GDP로만 설명되는 부유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어떨까. 한국 슈퍼마켓에서도 마르꼬브 빠까레이스키 (러시아 해외통포의 당근김치), 다양한 연휴 전통 음식, 레인보우 패키징 상품 등 다양한 문화가 선보일 날이 기다려지지 않는가.



[참고자료]

https://whatscookingamerica.net/history/cakes/fruitcake.htm

https://www.swisscolony.com/blog/bakery/fruitcake-an-enduring-holiday-tradition

https://www.supereva.it/vera-storia-panettone-45713

https://storiedimenticate.it/panettone/

https://www.learnreligions.com/what-is-hanukkah-gelt-2076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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