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22. 2024

집주인을 만나다

2024. 5. 21.

비가 이틀째 내렸다. 칠레는 비가 와도 한국만큼 습기가 많지 않아 불쾌함이 없다. 날씨는 정말 끝내준다. 한국에 가자마자 날씨 때문에 칠레가 바로 그리워질 것이다. 오늘은 칠레의 공휴일이다. 냉장고가 텅 비어 있어 남은 반찬과 식재료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집을 보기로 한 사람들이 왔다. 부동산 중개인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이 직접 왔다. 그가 집주인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집은 남편의 친구가 구하고 계약한 집이다. 칠레에 살고 있는 친구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집을 구해주었다. 덕분에 호텔과 에어비앤비 숙소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 남편의 친구에게 이곳에 사는 내내 고마워했다.


집주인이 온 줄도 모르고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이 집에 대해 엄청 자랑을 했다. 고장 난 곳이 없고 잘 지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쩐지 집주인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신발을 벗겠다며 우리를 배려해 주었다. 자기 소유의 집이니 더럽히지 않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이 집의 새로운 세입자가 정해져서 더는 집을 보여주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무주택자의 불편함 또는 서러움을 오랜만에 겪어본다. 


주말이 아닌데 휴일이라 긴장이 풀렸는지 점심을 먹고 졸렸다. 얼른 마트에 다녀와서 낮잠을 잤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일이 더 힘들다. 낮에는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책임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이 먼저 안다. 주말이나 휴일에 낮잠이 이렇게 쏟아지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 칠레로 가는 날을 기다릴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자꾸 한국과 칠레를 왔다 갔다 한다. 그 안에 여러 감정도 같이 온다. 기대, 걱정, 불안, 흥분 등 내게 필요한 것들을 대비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무사히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남편과 명상을 같이 한 지 이틀째다. 덕분에 나도 명상을 다시 하게 됐다. 명상을 한다고 삶이 더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해야겠다. 나의 복잡한 마음을 다시 여기, 지금으로 데려다 놓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과 명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