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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08. 2024

배불리 먹은 날

2024. 6. 8.

오랜만에 과식을 했다. 지인과 한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칠레에서 누군가가 밥을 사준다고 하면 얼른 물부터 챙긴다. 식당에서 물을 사 먹어야 하는데 생수 500ml 한 병에 삼천 원이 넘는다. 상대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 나는 두 개의 물병에 물을 가득 담아갔다. 내가 밥을 사야 할 때는 물을 가져가지 않는다. 상대가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지인은 손이 컸다. 나의 아이들을 배려하여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다양한 메뉴를 주문했다. 나라면 한 사람당 하나의 메뉴만 주문했을 텐데 그는 달랐다. 우리 가족은 편하게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마음 가는 곳에 돈을 쓴다.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확실해진다. 나와 만나는 누군가가 만날 때마다 밥값이나 커피값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나에게 돈을 쓸 마음이 없는 거다. 나와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지만 나와 만났을 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애정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칠레에 오기 전, 많은 지인들이 나에게 밥을 사주었고 현금을 쥐어주었다. 간단한 전화통화로 나에게 마음을 전했다. 나는 그때 다시 한번 나의 인간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해야 한다. 돈이든 안부 인사든지 간에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은 상대에게 가닿지 않는다. 현금이나 물질적인 것은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것을 받는 순간 단박에 그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속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인생을 돌이켜보고 내린 결론이다. 


나에게 밥을 사주었던 지인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아이에게 미리 생일을 축하한다며 작은 선물과 함께 용돈을 주었다. 할인기간에 잔뜩 주문해 놓고 결국 쓰지 못한 샴푸와 린스, 세탁 세제, 바디 로션을 함께 전해주었다. 그가 나에게 베풀어준 융숭한 대접은 나의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 정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시작이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말을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관계도 그렇다. 나중에 내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받았던 도움과 친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꼭 전달하려고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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