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4.
복직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할 만큼 바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글쓰기에 게을러졌다. 게을러져도 될 만큼 삶이 편안했다는 뜻일까. 아니다. 매일 치열했다. 아이들의 세 시간의 자율학습을 돌봤고 세끼의 식사를 차렸으며 골프 연습을 하루에 2~4시간을 했다. 골프에 빠지다 못해 미쳐있었다. 여름이라 빨래는 많이 나오고 물컵, 텀블러에 설거지할 식기들도 많았다. 잠깐만 숨을 돌리면 집안일이 쌓였다.
끼니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장을 보고 냉장고에 정리하고 요리를 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불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내 몸도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밥을 차려놓고 아이들이 빨리 식탁 앞으로 오지 않으면 괜히 화가 났다. 이번주는 남편의 휴가로 아주 편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남편의 입맛을 고려한 반찬 준비가 포함되어 딱히 편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데려가서 공부를 시킨 것으로 만족했다.
휴가는 가지 않았다. 칠레에 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했고 휴가 비용이 많이 들어서다. 많은 여행을 경험해 보고 나서야 우리 가족에 맞는 여행을 알게 되었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남편 때문에 여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돈 쓰면서 덥다고 짜증 내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들다. 여름휴가는 집에서 편하게 에어컨 바람 앞에서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자고 온 가족이 결정했다. 대신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길고 추위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강한 편이니 그때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칠레에서 산 경험 덕분에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고 간결해졌다. 꼭 필요한 물건, 관계 등을 자주 확인한다. 그동안 여행은 남들이 가니까 꼭 가야 하는 줄 알고 내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무작정 갔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가야 하니까 갔다. 이제는 남에게 예전보다 덜 휩쓸리게 되었다. 내 감정을 먼저 존중하려고 한다. 나에게 맞는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자주 나에게 묻는다.
잠깐 시간을 내서 상담을 받았다. 칠레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묵혀두었던 기억, 감정을 풀어내고 나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고 가야 직장에서 덜 힘들 것 같다. 많은 욕심을 내지 않고 내 지위에 맞는 본연의 역할을 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어제는 폭풍 쇼핑을 했다. 내가 바빠질 것에 대비해 아이들을 위한 비상식량,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주문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화장품도 샀다. 통장에서 갑자기 돈이 쑥 빠져나갔다. 잔액을 보며 잠시 한숨이 나왔지만 한 달 후면 내 노동의 대가로 통장이 살짝 채워질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던 시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일기를 쓰지 못해 마음이 항상 무거웠는데 결국 브런치에서 알림을 받고야 말았다. 물론 자동 알림이겠지만 세세하게 챙겨주는 그 시스템에 고마움을 느낀다. 누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는 느낌은 나를 힘을 내게 한다. 둘째가 걸린 감기가 나에게도 찾아와서 며칠 고생했다. 약을 먹고 골프 연습을 쉬었더니 몸이 괜찮아지고 있다. 튼튼한 몸으로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사드린다. 그들도 그들끼리 편안하기를 바란다.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들과 연락을 끊은 후로 내가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놀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