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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Nov 03. 2023

[85호][여성] 동물 여성

밍키

※ 이 글에는 동물 착취에 관한 묘사와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1)



 여자, 여성, 계집애, 처녀, 암컷, 암퇘지, 암탉, 암캐, 고양이, 토끼, 병아리, 꽃뱀, 젖소, 여우, 곰, 엉덩이, 엉덩이 살, 허벅다리 살, 허벅지, 다리 살, 가슴, 가슴살, 허리, 어깨, 어깨 살. 

 여성 인간. 여성 동물. 인간 여성. 동물 여성. 동물과 여성은 혼동되어 쓰인다. 그들의 존재가 동일선상에서 취급된다고 할 수 없지만,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늘어둔 단어 중에서 무엇이 동물을 지칭하는 것이고 무엇이 여성을 지칭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때로 그들을 부르는 칭호는 경멸적이다. 여성이나 동물과 관련된 단어는 그 자체의 사실이나 성질만을 담지 않는다. 다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 아래 붙어 있는 신체의 부분인 동시에 포르노그래피의 일부이며, 침이 고이는 식품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과 자연은 수동적이고 고정적인 착취의 대상이다. 여성과 남성, 동물과 인간, 자연과 문화 등의 이분법 안에서 여성, 동물, 자연은 근대 이념의 대척점에 놓인다. 근대의 주요 골자인 과학과 이성은 인간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믿음의 대상은 종교에서 이성으로 옮겨왔으며, 인간은 과학과 이성을 양손에 들고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인간의 몸이 아닌 전통과 자연의 저장소였다.”2)  자연과 마찬가지로 개척과 착취를 통해 인간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여성과 동물이 서로 묘사된 역사는 그들이 대상화된 역사와 다르지 않다. “암퇘지 같은 년”은 누구에게나 모욕적인 언사다. 여성을 동물에 비유해 여성과 동물의 지위를 동시에 격하시키는 방법이다. 인간은 이러한 언행을 통해 여성과 암퇘지에게 수치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동물은 모두 대상화되어 다시 착취의 근거로 이용된다.

 대상화된 몸에서는 주체를 찾아볼 수 없다. 물성을 지닌 어떠한 형태로만 세상에 존재한다. 돼지의 목살과 삼겹살, 닭의 다리와 날개는 식품의 일부이지, 한 주체의 몸이 아니다. 캐롤 애덤스는 이를 보고 ‘부재 지시대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의 저서 『육식의 성정치』에 따르면 부재 지시대상은 “독립된 실체로서 동물을 망각하게 만들고, 그런 동물을 떠올리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3) 이러한 논리는 여성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성 역시 한 인격체로 인정되지 않고 가슴, 다리 등 몸의 일부로서 표상된다. 일부를 통해 전체를 지우며 그들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객체로 포장하며 정복의 논리를 착실히 쌓아가는 것이다.

 

▲ (좌) 부위별로 나뉘어 파편화된 여성의 몸. ⓒSlideshare |(우) 동물의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대상화하는 방식과 같다. 돼지가 빨간 속옷을 입고 자위하고 있다.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는 방식과 동일하게 묘사된다. ⓒSlideshare 


 남성은 동물과 자연,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존재한다. 먹고 조롱하고 제거하며 존재론적 의미를 부정한다. 돼지의 다리와 발은 족발로 표현된다. 소의 갈비는 안창살, 제비추리가 된다. 동물이 살해당한 현실을 왜곡하고 은유적 표현으로 착취의 흔적을 지운다. 여성도 다르지 않다. 가슴, 허리, 다리가 가진 이름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적 은유는 결국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은폐되며 착취가 그들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된다. 이런 착취와 거래의 구조는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핵심 기제다. 강한 남성성의 증명 수단으로 자연과 여성, 동물이 이용된다. 남성 중심사회는 여성과 동물을 결코 인간(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에게 여성과 동물은 단순한 물적자원일 뿐이다.


 억압의 수단 

 여성과 동물을 지배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은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몸은 언제나 재생산권을 통제하려는 국가 인구 정책의 수단으로 환원되었다. 이를 통해 여성은 개별 인간이 아닌 자원으로 취급된다. 동물의 경우 이러한 기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물의 재생산권은 인간에 의해 통제된다. 여성 동물에게 강제적으로 난자를 주입하거나 채취하는 식의 착취를 반복한다. 축산업(畜産業)은 말 그대로 가축을 대상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단어 사이에 주체로서의 생명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의 몸과 더불어 몸에서 파생된 모든 게 상품이 된다. 동물의 감정과 상태, 의지는 착취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인간은 얼룩소의 우유를 얻기 위해 임신한 상태를 유지시켰다 죽이기를 반복한다. 이때 그들이 품은 자식은 또 다른 살해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동물의 몸은 분절되어 난자, 정자, 배아, 자궁, 유방 등으로 나누어지고4), 이러한 신체 기관은 생산 과정에 편입된다.

   

▲ (좌) 국가가 무료 임신 중단 수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포스터. 임신 중단 수술은 국가의 실리에 따라 장려되거나 불법화된다. ⓒ서울신문 |(우) 철갑상어 인공 수정을 위해 알을 빼내는 모습 ⓒ오마이뉴스 


 동물의 재생산권을 통제하여 주체성을 박탈하는 방식은 여성에게도 사용된다. 임신 중단 수술5)에 관한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담론6) 은 현재까지도 여성을 억압한다. 이 담론은 쉽게 말해 “여성의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라는 의미로, 임신 중단 수술의 찬/반 논리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프로라이프가 말하는 생명권은 허상에 가깝다. 여성이 성폭력에 의해 임신하거나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7) 임신 중단은 허용된다. 또한 시험관 시술 중 생긴 배아는 '잔여배아'로 명명되어 연구실험에 쓰이거나 폐기된다. 이 배아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명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 선별적인 태아만이 소중하다. 프로라이프 담론에서의 생명권은 결국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더불어 동물의 생명 또한 ‘모든 생명’에 포함되지 않는다. 많은 비인간 동물이 인간에 의해 살해당해도 그들의 생명권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다. 살해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는 비윤리적 대우는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더불어 식품으로 취급되는 가축과 반려로 구분되는 동물은 선택적 살해 대상이 된다. 고양이와 강아지, 햄스터 등은 소중한 나의 가족이지만, 닭과 돼지, 소는 나를 튼튼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음식이 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 인간은 죽이면 안 되지만 동물은 죽여도 된다는 종 차별적 사고, 가축과 반려동물 사이의 선택적 생명권. 이는 모두 같은 구조로 반복된다. 


 생명권에서 성원권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말하는 프로초이스 담론 또한 한계가 존재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사회와 독립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여성의 선택과 태아의 생명은 대척점에 놓이며, 그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보지 않는다. 단절된 관계는 여성과 태아의 관계 역시 분리해서 바라본다. 양육 환경, 여성의 경제적 상황과 미래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몸은 혼재된 상태로 판단의 대상이 된다. 여성과 태아 중 한 명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임신한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자신과 사회, 아이와 사회가 어떠한 관계를 맺을지를 고려해 임신 중단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수술 여부는 단순히 아이에 관한 애정의 척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태아의 생명존중과 어머니의 자기결정은 서로 대립되고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서로를 보충하고 의존하는 관계였다.”8) 여성과 태아는 독립적이고 배타적으로 사회에 존재하지 않으며 태아와 여성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계획정책, 여아낙태, 미혼, 빈곤, 근로 여성의 임신 중단 수술 행위에서 임신 중단 수술을 하는 여성의 몸이란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각축하는 바로 그곳이다.”9)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있어 고려하는 과정을 지운다는 것은 그의 성원권10)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가 가진 서사를 무시하며 사회와 무관한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임신 중단 수술에 관한 담론. 여전히 여성과 태아는 사회와 분리되어 있다. 반대 입장 역시 모순되어 있으며 현재의 임신 중단 수술 담론이 여성을 고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울신문

 

  그렇기에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분법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선택과 태아의 생명 중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각축의 장이 아니다. 임신 중단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성원권, 그 여성과 연결된 태아의 삶을 고려한 성원권이 필요하다.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물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통해 우리가 억압된 구조를 마주한다. 반려동물은 죽이면 안 되지만, 가축은 된다는 선택적 생명권은 낳아도 되는 태아와 낳으면 안 되는 태아의 구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며 소, 돼지, 닭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어야 한다. 동물이 이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인간이 허용한 공간뿐이다. 동물에게는 동등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인정받을 성원권이 필요하다. 여성과 태아의 몸이 사회와 분리되어 있지 않듯, 동물의 몸 또한 인간의 몸과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과 동물은 조각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섹시한 다리와 맛있는 가슴만이 남았다. 무분별한 착취는 대상을 확대하며 여전히 자행된다. 연결된 착취의 사슬은 우리 모두를 구속하고 있다. 차별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는 영원히 반복될지도 모른다. 



1) 본 글에서 ‘인간’은 인간 동물을, ‘여성’은 인간 동물 여성을, ‘동물’은 비인간 동물을 뜻한다. 인간도 동물이며,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건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이다. 본 글에서는 피치 못하게 ‘인간’, ‘여성’, ‘동물’로 명칭을 사용한다.

2) 정연보. (2004). 출산문화 담론에 나타난 자연 개념과 젠더. 여성과 사회, (15), 232-256.

3) 캐럴 J. 아담스. (2018). 육식의 성정치(류현, 역). 이매진. (원저작출판, 1990). (104쪽).

4) 위의 글.

5) 낙태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게 다가올지도 모르나, 이는 아이를 떨어트린다는 의미이다. 임신 중단 과정에서 산모의 존재를 지워버리며 원인을 여성에게 귀속시킨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낙태 대신 임신 중단 수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6) 임신 중단 수술과 관련한 두 가지 입장이다. 프로라이프(Pro-Life)는 생명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태아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프로초이스(Pro-Choice)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한다.

7) 양현아. (2005). 여성낙태권의 필요성과 그 함의. 한국여성학, 21(1), 5-39.

8) 양현아. (2010).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 생명권 대(對)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 한국여성학, 26(4), 63-100. (75쪽).

9) 위의 글.

10) 성원권이란 한 사회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받는 권리다. 타인의 인정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 사람 대우, 사람 자격의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서울: 문학과지성사. (59쪽).



참고문헌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서울: 문학과지성사.

양현아. (2005). 여성낙태권의 필요성과 그 함의. 한국여성학, 21(1), 5-39.

양현아. (2010).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 생명권 대(對)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 한국여성학, 26(4), 63-100.

온라인뉴스부. (2015). 서울 신문 9. 정관수술, 과연 정력에 이상 있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서울 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1213500051 (2023.07.16. 접속).

이성원. (2017). [커버스토리] 엄마가 되지 않을 자유. 서울 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1111014001. (2023.07.16. 접속).

정연보. (2004). 출산문화 담론에 나타난 자연 개념과 젠더. 여성과 사회, (15), 232-256.

캐럴 J. 아담스. (2018). 육식의 성정치(류현, 역). 이매진. (원저작출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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