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인 역량, 그 개념을 먼저 살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역량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최근 역량이라는 단어가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보면 기업 내에서 활용하는 공통역량, 직무역량, 기업역량 외에도 취업역량, 창업역량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에서 역량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기업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역량을 하나의 평가대상으로 보아 역량평가를 실시했으며, 최근에는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기존 고위공무원단 진급에 한정되어 진행되던 역량평가가 하위직급까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토록 역량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으나 정작 역량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는 기업의 HR담당자 중에서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역량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개념이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치며 확대전개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본래 본 편에서는 역량평가의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그 전에 역량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오늘은 역량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역량(Competency)이라는 개념의 등장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역량에 대한 연구는 미국 국무성에서 초급 해외 공보 요원(Foreign Service Information Officers : FSIO), 소위 외교관의 선발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FSIO는 높은 IQ를 보유하고 미국의 주요 명문대를 졸업한 우수인재를 대상으로 미국사, 서양사, 정치 및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즉, 지식과 지능(Intelligence)을 기준으로 선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발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 중에서 FSIO로 파견되어 외교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선발시험에서는 높지 않은 점수를 획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성과를 창출하는 이들도 존재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미 국무성은 FSIO의 선발에 대해 하버드대학의 교수인 McClelland에게 연구를 의뢰하였고, 실질적으로 FSIO의 성과는 지식이 아닌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 특성에 귀인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McClelland는 이러한 개인적 특성을 ‘역랑(Competency)’으로 명명하였으며, 1973년 “지능 검사에 대한 역량 검사의 우위성(Testing for Competence Rather Than Intelligence)”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다. 역량은 등장과 동시에 심리학 분야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Boyatis, Spencer&Spencer, Dubois 등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학자들마다 역량에 대한 정의는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 지니는 요소를 종합하면 역량은 다음과 같이 정의내릴 수 있다.
특정한 상황이나 직무에서 고성과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속적 발현을 보이는 개인의 내적 특성
우선 이러한 역량의 개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Spencer&Spencer는 역량의 요소를 다음과 같은 Iceberg 모델을 통해 제시하였다. 스킬과 지식은 수면 위에 드러난 부분으로 후천적인 학습을 통한 개발이 용이하며, 그에 대한 평가도 쉽다. 반면 자아개념, 특질, 동기는 수면 아래 위치한 부분으로 해당 요소는 측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선천적 성격이 강해 개발이 어려우며 그림에 나타난 수면으로부터의 깊이 차이처럼 자아개념, 특질, 동기 사이에서도 측정 및 개발의 난이도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수면 아래 세 가지 요소는 복잡하게 얽혀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이 어떠한 행동을 하려는 ‘의도’를 형성하며, 그 의도에 따라 개인은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스킬과 지식 외 수면 아래 위치한 역량을 진단(평가)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취하는 행동을 관찰하여야 한다. 역량의 구성요소를 이해하였다면 다시 앞서 언급한 역량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내적특성은 역량의 5가지 요소가 철저하게 결합하여 개인이 특정상황에서 발휘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주위에서 ‘인싸’라 불리는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인싸 친구들은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며, 금방 친구가 되어 첫만남의 분위기를 주도하곤 한다. 이들은 처음만나는 사람들과 친구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내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친구들은 어떤 날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날은 그 자리를 즐기지 않는다. 즉, 그런 행동이 사람을 대하는 상황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어떤 개인이 역량을 지녔다고 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행동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또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1회적으로 발생한 행동은 역량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후천적으로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낯가림이 심하며 처음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그러한 개인적 특성을 벗어나 온전히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이며 편안함을 느끼면서 처음 보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쉬울까? 이러한 역량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칠면조에게 나무 오르는 법을 가르칠 수는 있으나 그보다 다람쥐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량의 구성요소와 개념에 대해 이해를 했다면 이제는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다행히도 많은 학자들이 McClelland의 역량개념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으며 행동특성을 어느정도 규명할 수 있는 항목으로 구분하였다. 이 항목은 Roswell과 Dubois에 의해 분석적 사고력, 개념적 사고력, 정보지향성, 관계형성력, 철저확인력, 자신감 등 총 27개로 정리되었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인싸 친구들의 행동특성을 역량 관점에서 설명하면 ‘관계형성력’이라는 역량을 높은 수준에서 발휘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예시를 든 김에 ‘관계형성력’이라는 역량을 이제 기업의 직무에 가져와서 이야기해보자. 높은 수준의 관계형성력이 중요한 대표적인 직무는 고객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향상시키며, 항상 새로운 사람을 대해야 하는 영업이다. 영업담당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껄끄러워하며, 초면인 관계에서 묵묵하게 행동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면 영업담당의 포지션에서 높은 성과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이 경우 기업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해당 영업담당의 관계형성력을 개발하거나, 또는 높은 관계형성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이다. 관계형성력을 개발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이후 프로세스는 HRD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높은 관계형성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을 선택한다면 이는 역량기반채용(선발)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역량기반채용과 관련해서 행동사건면접법(Behavior Event Interview : BEI)이 많이 활용되는데, 이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다시 본 예시로 돌아와 적합한 역량을 지닌 인재를 채용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기존에 성과를 내지 못했던 영업담당은 해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모든 직무에서 고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반드시 높은 수준의 관계형성력을 지녀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IT개발 또는 연구 직무에서는 고성과를 위해 높은 수준의 관계형성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대신 직무 특성에 알맞은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 즉, 직무마다 요구되는 역량이 상이하다. 여기서 우리는 각 직무마다 고성과를 위해 요구되는 역량을 정의할 필요성이 생기는데 이 작업을 ‘역량모델링’ 이라고 부른다. 조직 내 모든 직무마다 요구되는 역량을 정의했을 때 비로소 역량기반의 인사관리(채용, 평가, 보상, 개발 등)를 진행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된다. 직무별 요구되는 역량이 명확해졌을 때 해당 직무에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으며, 실제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보여지는지 평가를 할 수 있다. 또한 개발해야 할 역량이 명확해야 개발의 방향성도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이동/승진 시에도 보유한 역량이 새로 맡게 될 직무에 적합한지 여부를 평가하여 참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역량기반 HR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 역량의 등장배경과 역량의 개념, 역량활용을 위한 역량모델에 대해 두서없이 살펴보았다. McClelland에서 시작된 역량의 전통적인 큰 줄기를 바탕으로 현재는 수많은 조직에서 역량 개념을 각 조직에 적합하게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때문에 역량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개인이 겪은 경험에 따라 역량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주어진 상황에 적합하게 역량 개념을 응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역량이 지니는 근본적인 개념이 훼손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절하게 활용하되 개념의 근본을 벗어나면 그것은 껍데기만 역량일 뿐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없다. 역량을 활용함에 있어서 그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특히나 중요한 이유이며 우리 조직은 역량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