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교육청 감사과 문답
가정법원 조사가 끝나고 며칠 되지 않아 이번에는 교육청 감사과에서 문답을 받으러 출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검찰에서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송치되고 난 후 검찰에서는 교육청으로 공문을 보내 수사 내용을 알렸다. 은혜는 교육공무원이므로 법원 수사와 별개로 공무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 대해 품위유지 위반 건으로 조사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감사과에서는 출석 문답 전에 의견서를 먼저 제출하라고 알려왔다. 의견서 내용이 후에 징계위원회에 자료로 올라가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성해야 했다. 같은 사건이지만,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와는 또 다른 맥락으로 작성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은혜는 윤 변호사에게 의견서 초안을 보내고 검토를 부탁했다.
윤 변호사의 검토를 바탕으로 의견서를 수정하는 데에도 며칠이 걸렸다. 의견서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교육청 문답을 준비해야 했으나 처음 받는 문답이 법원 조사와 어떻게 다른 건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감도 오지 않았다. 두 번의 경찰 조사와 법원 조사에 이어 교육청 감사과 문답까지, 한 고개 넘으면 또 하나의 넘어야 할 고개가 연달아 버티고 있었다. 장애물 달리기를 하듯 매번 수행해야 할 것들을 신경 쓰느라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힘들게 버텨 온 지난 구 개월의 시간이 아득했다.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은혜는 숨이 막혀왔다. 창밖에 보이는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한없이 쓸쓸했고 더없이 지치고 초라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말, 거리는 더없이 화려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은혜는 점심까지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교육지원청 감사과로 향했다. 감사 담당 주무관 두 명이 교육청 4층의 작은 사무실에서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인 여성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였고, 가느다란 얼굴에 마른 체형이었다. 은혜에게 계속 연락을 해 왔던 남자 주무관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였고, 통통한 체형에 눈매가 선해 보였다.
“선생님, 긴장하지 마시고요. 저희의 질문에 대해 사실대로 있었던 일을 답변하시고 추가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면 됩니다.”
주무관이 은혜의 굳은 표정을 보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검찰청에서 보내온 범죄 혐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로 문답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작성한 사실확인서의 왜곡되고 과장된 내용에 대해 경찰 조사와 법원 조사에서 계속해서 사실이 아님을 수도 없이 진술했지만, 범죄 혐의 내용에는 은혜의 진술이 아닌 아이들이 작성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세워둔 것 외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했어도 수사기관에서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쓴 사실확인서의 내용을 더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은혜의 답변을 들으면서 주무관은 수차례 안타까워하는 눈빛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4시간가량의 문답을 마치고 나오자 어느덧 컴컴한 저녁이 되었다. 은혜가 조사를 받는 동안 계속 기도하고 있겠다며 걱정 말라고 했던 김미연 집사님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잘하고 나오셨어요?”
“아, 집사님.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답을 한다고 했는데, 잘한 건지 뭔지 모르겠어요.”
“신현수 목사님도 계속 기도하시고, 저도 계속 기도했어요. 잘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 식사 거르지 말고요.”
“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은혜는 누가 정말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은혜의 수업 배제가 계속되면서 보강 수업이 많아지자 은혜를 원망한 동료 교사도 있었고, 은혜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탄원서를 부탁하자 꺼려하며 거절한 선배 교사도 있었다. 교장과의 알력 싸움에서 은혜의 일을 교장을 압박하는 용도로 이용하려는 사람마저 있었다.
그렇기에 은혜를 걱정하고 기도해 주는 집사님을 비롯한 목사님, 주변에서 늘 힘을 주는 부장 언니들과 지인들이 더욱더 고맙고 소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가 힘들 때마다 그들에게 연락해서 괴로움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좋은 말도 한두 번 들어주는 것인지, 수도 없이 은혜가 맞닥뜨리고 있는 힘든 상황을 일일이 나눈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무너져 내릴 때 은혜가 막상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휘청거리고 무너질 때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서 끝없이 침전하며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홍선영 부장과 셀 리더인 김미연 집사님이나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은혜는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바닥을 칠 때마다 겨우겨우 불안과 우울의 늪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말연시의 다채롭고 화려한 조명과 불빛도, 크리스마스의 경쾌한 캐럴 소리도 은혜에게는 즐길 수 없는 딴 세상의 모습이었다. 은혜가 인생 최대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새해는 무심하게 밝아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각종 매체에서 흘러나오고, 개인 메시지로도 희망찬 새해의 들뜬 인사가 끊임없이 은혜의 핸드폰을 울리고 있었다. 새해 인사말처럼 올해 은혜에게 행복하고 복 받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며, 은혜도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새해에는 즐겁고 행복한 일 가득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