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산책

아줌마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사모님도 아닌

싱글 여성을 부르는 호칭어가 없을까.

by 은향

서른 중반이 넘고부터 낯선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별 생각없이 하는 호칭어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서른 후반쯤 시장에 갔다가 시장 상인한테 처음 이 말을 처음 들었다.

"아줌마! 싸게 해 줄게 가져 가요."

헉! '아줌마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느꼈던 당황스러운 마음을 넘어선 뭔지 모를 열패감과 황당함이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긴한데 사실 감사하게도 난 동안인 편이라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끔씩 '아줌마'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에 돌팔매질을 당한 듯 처연했다.


아래 위키백과에 나오는 '아줌마'의 정의를 보면,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충분히 납득이 될 것이다. '아줌마'라는 호칭 속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또한 결혼한 여자를 부르는 말이기에 미혼인 여성이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말을 들으면 뜨악할 수밖에 없다.


아줌마 또는 아주머니는 중년의 여성을 일컫는 칭호이다. 본래는 친척 여성에게 부르던 칭호였다. 보통 어버이와 항렬이 같은 여성을 가리키는 “아주머니”라 하여 친숙하게 부르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형의 부인에게도 아주머니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1910년 이후 일반 기혼 여성에게도 아주머니, 아줌마라 부르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주로 '결혼한 여자'를 평범하게 부르는 말이 되었다. 근대 한국 사회에서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섞인 '억척스럽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으로써 인식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과 성 평등론이 등장하면서 아줌마, 어머니도 일종의 여성이라는 견해가 대두되면서 아줌마, 아주머니란 단어의 부정적인 인식이 희석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미혼 여성은 아줌마라는 단어를 부르는 것이 실례처럼 인식되기도 하였다. - 출처 <위키백과>


사실 나이가 좀 있는 미혼 여성을 부르는 마땅한 호칭어가 딱히 없기도 하다. 서양처럼 결혼 여부로 미스, 미세스로 나누거나 이름을 부르면 간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한데, 낯선 사람인 경우 결혼 여부와 이름을 알 수도 없고, 이런 호칭어는 우리의 정서상 맞지 않다.


올초에 통영에 혼자 잠시 다녀온 일이 있다. 서피랑의 99 계단을 내려오면서 사진도 찍고, 벽화에 써 있는 글귀를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이집 가방을 앙증맞게 멘 아이들이 떼를 지어 선생님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연스레 눈길을 돌려 끄트머리에 있는 귀엽게 생긴 남자 아이한테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귀엽게 생긴 남자 아이 옆에 몸집이 큰 남자 아이가 내가 말을 건넨 귀요미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근데 난데없이 몸집 큰 아이가 나에게 툭 불화살같은 말을 내뱉었다.

"아줌마!!"

"뭐라고?"

"아,줌,마!"

"나 아줌마 아니거든!!!"


내가 생각해도 어린 아이랑 이 무슨 유치한 대화인가 싶었지만, 그 몸집 큰 아이에게 아줌마가 아니라고 꼭 지적해서 바로잡고 싶은 이 심리는 무엇인지... 이 모습을 보고 귀요미가 덩치에게 말했다.


"아줌마라고 하는 거 아니야."

"아유, 이뻐라.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귀요미를 칭찬하자 몸집 큰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얘, 하나도 안 똑똑해요."

"뭐가 안 똑똑해? 엄청 똑똑하기만 한데~"


뒤따라오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들을 붙잡고 내려가지 않았으면, 이 설전이 어떻게 끝났을지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어린 아이들에게조차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꼭 지적해야만 그나마 속이 풀린다.


요즘에는 '어머니'라는 말도 듣는다. 병원 예약을 위해 전화를 했다. 직원은 내 목소리만 듣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 어머니가 진료 받으실 건가요?"


또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내 목소리는 내 얼굴보다 더 어려서 상당히 어린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도 많다.(사실 애기같은 내 목소리가 콤플렉스일 정도이다.) 그 병원에 예약을 잡기가 어려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었는데, 그때마다 그 직원은 '어머니'라는 말을 했고, 나는 또 그때마다 "어머니, 아닌데요."라고 딱딱하게 말했다.


불혹을 넘긴 나이인지라 결혼한 내 친구들이 중학생의 학부모인 걸 보면, 내가 결혼했다면 지금쯤 '어머니'였을테지만...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라고 성급히 판단해서 말하는 건 잘못이라는 것을 꼭 지적해 주고 싶었다. 더군다나 전화로 서비스 응대를 하는 병원 직원의 이런 언어사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어떤 식으로든 말해주고 싶었다. 얼마 전 병원에 갔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고 왔다.


어제는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어린이 도서관이지만 성인이 보는 책도 있고, 앉아서 노트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해서 어떠한지 살피러 갔다. 시설 이용 관련해서 묻느라고 1층과 2층에 있는 두 명의 사서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여지없이 두 명 모두 나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어를 썼다. 이번에는 담담하게 "저 어머니, 아닌데요."라고 했더니, "아, 죄송해요. 어머니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요."


병원 직원도 사서도 어찌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어머니를 많이 상대하기에 "어머니"라는 호칭어가 입버릇이 되었을 수는 있을 것도 같다. 나도 가끔 교회 '집사님'들께 입에 붙은 '선생님'이라고 말하기도 하니까. 예전에 대학교 때 '선배님'이라는 말이 하도 입에 붙어서 오랜만에 은사님을 찾아뵈러 가서 '선생님'을 자꾸 '선배님'이라고 불렀던 적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에 결혼한 불임 여성의 경우 이런 식으로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어땠을까. 내가 느낀 불쾌감을 넘어서 더 큰 상처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씩 듣는 또다른 호칭어에는 '사모님'도 있다. 주로 부동산 관련해서 일을 처리할 때 부동산 사장님들한테 듣는 말이다. 근데 나도 참 이상하다. 분명 '저 사모님 아닌데요."라고 정정을 해야 마땅하나 때로는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분명 '사모님'이 아니지만, 상대방이 높여 부르고자 한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40대 미혼 여성을 부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호칭어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아줌마'도 아닌, '어머니'도 아닌, '사모님'도 아닌... 마땅한 호칭어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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