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새학교에 가면 신규 교사처럼 많은 것을 새롭게 익히고 배워야 한다. 새학교의 시스템과 조직 문화 등은 처음엔 늘 낯설고 어색하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새로운 학교의 공간에 적응해야 한다. 요즘 학교 건물은 참 복잡하다. 학교 건물이 일자형이 아니라 연결통로를 통해 두 건물이 이어져 있어 교실이나 교무실을 찾아 헤매기 쉽다. 교실이나 교무실, 화장실 등 위치를 익히는데 시간이 꽤 필요하다. 책상 옆에 건물 배치도를 복사해서 붙여 놓고, 교실이나 교무실에 이동할 때마다 확인하는 것은 필수이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서는 화장실을 적응하기가 영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는 교직원 화장실이 각층마다 작게라도 설치되어 있다. 개학 첫날, 교직원 화장실을 못 찾고 헤매다가 쉬는 시간에 급한대로 학생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고데기로 머리를 단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나를 보고 흠칫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선생님이 올해 여기 처음 와서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교직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아니?"
"1층에 있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교무실에 들어와서 배치도를 확인해 보니 5층짜리 학교 건물에 교직원 화장실은 1층에만 있을 뿐이었다. 수업이 연달아 있어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경우에 1층 화장실까지 오가기에는 쉬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업을 마치고 부장님이 자리에 들어오자마자 물어 보았다.
"부장님, 여기는 교직원 화장실이 층마다 없어요?"
"네. 없어요..."
"그럼, 수업 연달아 있어서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야 할 때는 아이들과 함께 써야 해요?"
"네, 그랬어요. 좀 불편하지요..."
"저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많이 불편할 것 같아요. 아까 화장실 들어갔는데, 고데기 하다가 제가 들어오니까 많이 놀란 눈치더라구요. 혹시라도 아이들이 어느 선생님 뒷담화라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들어갔다면, 서로 얼마나 민망하고 불편하겠어요..."
개학 첫날, 첫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배부할 학습지를 인쇄해야 하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1시간도 더 일찍 출근했다. 오전 수업에 배부할 학습지는 모두 인쇄를 했지만, 교무실에 남은 복사용지가 별로 없었다. 1교시 공강 시간에 복사 용지를 가져다 놓아야 다른 선생님들도 필요한 인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사용지를 어디에서 가져와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부장님이 자리에 없었다.
전입오면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까지 기존에 근무했던 사람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다. 우리 교무실에는 3명이 근무하는데, 부장님을 제외하고 계원인 나와 음악 선생님은 올해 전입을 와서 우리끼리 있을 때면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할 때가 있다. 음악 선생님과 행정실에 지문 등록을 하러 간 김에 행정실 주무관에게 복사 용지를 어디에서 가져오는지 물어보았다.
"복사 용지는 1층 창고에 있어요. 이 열쇠 가져가셔서 꺼내신 후 다시 행정실에 열쇠 반납해 주세요."
"용지 옮길 카트 같은 건 어디에 있나요?"
"그건 발간실에 있으니 쓰신 후 그것도 갖다 놓으시면 돼요."
카트를 챙긴 후 창고로 가서 복사용지를 잔뜩 실었다. 혼자 옮길 수 없어서 50대 후반의 음악 선생님께 카트를 뒤에서 밀어만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복사용지 10박스를 채워 놓은 후 발간실에 다시 카트를 가져다 놓고, 행정실에 열쇠를 반납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아침부터 조금 힘을 썼다고 저질 체력이 금세 신호를 보내왔다. 맨손으로 박스를 옮기다가 박스 모서리에 손을 베어 붉은 피가 흘렀다. 따끔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헥헥거리며 숨을 고르며 앉았다.
"어휴, 손에 피 나네. 엄청 아플텐데..."
"조금 따가워요. 잠시 어지러워서 괜찮아지면 보건실에 가서 약 바르려구요."
"어이구, 아침부터 힘쓰고 피까지 보고 고생이 많네."
"뭐, 이 정도면 괜찮아요. 그래도 복사 용지 저만큼 채워 놓으니 든든하고 좋아요. 예전에 어른들이 월동 준비로 창고에 연탄 가득 쌓아두고 흐뭇해 하시던, 꼭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상하게도 나는 복사용지가 줄어드는 것이 항상 예민하게 신경이 쓰인다. 용지가 점점 떨어져가면 불안하기까지하다. 집에 쌀이 떨어지고 땔감이 없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늘 복사 용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용지를 가득 채워두어야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처럼 올해 새로운 학교로 옮긴 H부장님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H부장님은 내가 옮긴 학교에 오래 전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물었다.
"부장님이 여기 근무할 때에도 각 층에 교직원 화장실이 없었어요? 학생 화장실을 같이 쓰려니 너무 불편해요.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쓰니 서로 불편하고, 공강 시간에는 수업하는 교실 옆으로 지나가야 하니 그것도 신경쓰여요."
"거기가 그랬었나... 오래 전이라서 기억이 안 나네요... 내가 옮긴 학교는 교직원 화장실에 도어락이 없어서 화장실 갈 때마다 열쇠를 챙겨 갖고 다녀요."
"네? 무슨 음식점에서 화장실 갈 때 열쇠 가져가는 것처럼 열쇠를 갖고 가야 해요?"
"네... 그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니, 거기 본 교무실이라서 선생님들도 많고 남자 선생님들도 있을텐데, 그럼 화장실 가는 게 너무 티 나잖아요?"
"그니깐요..."
"아니, 도어락이 얼마나 한다고 아직도 열쇠를 갖고 다녀요?"
"그러게 말이에요. 어젠 내가 깜빡하고 열쇠를 집에 갖고 온 바람에 실무사한테 전화까지 왔어요. 혹시 화장실 열쇠 갖고 갔냐고... 여기 학교, 화장실 선진화학교라고 애들 화장실은 싹 다 고쳤다던데...."
누구에게나 새로운 곳은 이래저래 낯설고 불편하다. 익숙해지고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되면, 지금 이렇게 느끼는 불편한 점들은 아무렇지 않게 무뎌지겠지. 기존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런 불편한 점을 전혀 못 느끼는 것처럼.